아이는 급하게 슬라임 놀이를 마친 뒤, 남은 시간을 확인하며 뽀로로 장난감을 꺼내 온다.
나는 미리 떠놓은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인다.
게임에 빠진 아이, 놀이를 계속하고 싶은 아이, 집 안을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아이…
역시 그 아이들이 뽀로로 캐릭터로 변신해 모두 등장한다.
이번 이야기의 중심은 **‘게임에 빠진 아이’**이다.
아이가 나에게 묻는다.
“이 아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글쎄… 마음속에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조절하는 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괜찮아지기도 한단다.
그런데 게임에 빠진 아이는 조금 외로운 아이가 될 것 같아.”
아이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놀이터에 함께 가자고 권하고,
간식을 사 먹으러 가자며 게임에 대한 관심을 돌려보려 애쓴다.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결국 아이는 ‘포비’를 소환한다.
우리에게 포비는 ‘해결사’다.
아이는 포비를 통해 ‘게임에 빠진 아이’를 훈련시킨다.
인사하는 법, 집을 치우는 법을 가르치며 약간의 보상을 주고,
나는 엄마의 역할로 연신 칭찬 폭격을 퍼붓는다.
그러자 ‘게임에 빠진 아이’는 조금씩 게임을 줄이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아이로 변해 간다.
“00야, 포비도 너의 마음속에 있는 아이 중 하나였구나.”
00은 예전에 친구와 말이 통하지 않아 사이가 나빠졌을 때,
그 일을 계기로 한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욕구’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던 아이는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그 마음을 이루거나 조절하기 위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들을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친구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멋진 성과를 이루고 싶은 마음….
이처럼 자연스러운 마음속의 욕구는
때로는 조절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경계의 대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한 것을 죄악으로 여기기 시작하는 순간,
내 삶은 나 자신의 통제 시스템 안에 묶여 버린다.
그러나 ‘욕구’는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힘이다.
그로 인해 생겨난 독특한 개별성은 모두 소중하다.
…흠, 문득 내 욕구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럼 좀 어때서!!!”
나에게는 뻔뻔하게 버티는 훈련이 필요한가 보다.
“내 마음 안의 포비야, 오늘도 함께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