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가격
사내는 지폐를 한 장 꼭 쥐고 걸었다. 거리의 여자들은 붉은 불빛 아래 서 있었다. 비가 한 차례 내렸는지 바닥이 젖어있었다. 바닥은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찢어진 전단지에 사진은 없고 인상착의만 적혀있었다. 하지만 사진이 있었어도 모르는 얼굴이었을 것이다. 기차역에 가려면 이 거리를 지나야 했고 나는 지폐를 꼭 쥔 남자의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키가 작고 더벅머리에 작은 밤톨 같은 사내였다. 커다란 차가 한 대 지나갔고 여자들이 저마다 손짓을 했다. 남자는 결심을 했는지 한 곳으로 걸어갔고 거기에는 그보다 키가 두어 마디는 큰 여자들이 있었다. 여자들은 처음에는 환영하더니 남자의 지폐를 보곤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남자는 한 장의 지폐를 주먹질하듯 여자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그러나 그쯤 흥미를 잃은 여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팔았다. 그럼 나는 너희들에게 얼마짜린데! 하고 사내가 갑자기 고함을 쳤지만 여자들의 웃음소리와 자동차 경적 소리에 묻혀 그 말을 듣는 건 나뿐이 없었다. 기차역 근처, 지난달에는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더니 오늘은 알밤이 몇 개나 떨어져 있었다. 이미 그 거리에서 멀리 떨어진 나는 내가 도착할 낯선 곳을 고대했다. 기차 출발 시간을 가늠하다가 아까 그 사내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밤톨 같은 뒤통수만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다.
얼굴을 봐도 바로 잊히는 보통의 가격, 보통의 사람들
이 시를 쓴 건 순전히 ‘화대’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집에 공기 청정용으로 스투키를 인터넷으로 샀는데 밑에 물 받침대가 없었다. 그걸 또 인터넷으로 시키자니 성가셔서 집 근처 꽃집에 가서 화분 물 받침대를 달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아, 화대요’라고 대답을 하셨다. 나는 늘 그런 식이다. 화대라는 단어 하나에 또 시작인 것이다.
화대는 물 받침대란 뜻도 있지만 다른 말로 직역하자면, 꽃값이란 뜻도 있다. 옛날 잔칫날 기생이나 악사에게 주던 돈이라고 한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는다는 구조. 그 안에 인간관계의 어두운 본질이 숨어 있다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욕망이든 결국은 누군가의 관심을 사기 위해 무언가를 지불한다.라는 개념. 하지만 관심은 늘 불균형하다. 어떤 이는 지폐 한 장을 내밀고, 어떤 이는 눈빛만 건네고, 어떤 이는 대가 없이도 모든 걸 얻는다.
시를 쓰기 전에 다른 몇 가지 소재를 두고 고민을 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이것을 쓰기로 결심을 했다. 어떤 이에게 이 시는 불편할 것이다. ‘성매매’라는 소재부터. 하지만 그 직업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다. 도둑이나 정치인처럼 말이다. 불편하다고 아예 없던 것처럼 굴 수는 없는 법이다. 불편하고 올바르지 않은 것도 직면해야 할 때가 있다. 괜히 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또한, 현대사회에 원초적으로 인간의 값을 매긴다는 점에서 내게 피할 수 없는 소재이기도 했다.
인간이 주고받는 거의 모든 것에는 지불해야 할 가격이 있다. 단순히 돈뿐만이 아니다. 음식, 옷, 자동차, 사랑, 의리, 신뢰 등으로 지불할 때도 있다. 누군가의 감정에도 돈이 들고, 물론, 관심에도 ‘가격’이 있다. 그리고 그 가격은, 대개 그 사람의 외로움이나 체면, 혹은 절실함이 정한다. 시 속의 사내는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채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욕정만을 채우려고 그 거리를 헤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값을 치를 관심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가격은 그의 예상을 빗나갔고 그럼 혹시 나의 관심은 당신에게 필요 없는가. 필요하다면 그 합당한 가격은 얼마인가. 절규한다. 그것은 사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한 명의 인간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고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닿을 곳 없는 그 물음은 공허하고 공허하기 때문에 더욱 처절하다.
그를 거절하는 이들이 냉담해 보이지만, 그들 역시 자기를 팔아 하루를 버티는 존재들이다. 얼굴을 봐도 곧 잊히는, 전단지에 붙어있어도 그냥 지나치고 마는 그저 보통의 사람들. 이 시를 쓰면서 나는 사내와 거리의 여자들, 그리고 ‘나’를 동일 선상에 두었다. 누구나 ‘사고 팔리는 존재’로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한 장의 지폐 때문이 아니라, 그 지폐에 담긴 감정의 밀도가 문제다. 그는 관심을 사고 싶었을 뿐이고, 세상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 바빠서, 그 말조차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값은 한정되어 있고, 나는 또 누군가를 원한다. 그것이 짝사랑의 상대일지, 덕질하는 연예인일지, 나의 승진을 좌지우지하는 상사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당신의 값에 관심이 없고 한눈을 판다고 그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안타깝고 안쓰럽지만 그것으로 그들을 악인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은연중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너에게 얼마짜리야?” 하지만 대답은 늘, 웃음소리와 시끄러운 경적에 묻혀 사라진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소외감을 구체화해서 쓰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값을 당연히 여기는 거리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 존재의 가격에 대한 물음, 관심받고 싶은 마음, 존중받고 싶은 마음, 위로받고 싶은 마음. 그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 되었을 때, 그리고 남자가 그럼 나의 값은 얼마냐고 외쳤을 때, 그 물음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쓰고 싶었다. 이 시를 쓰면서 나는 인간의 내면이 ‘얼마짜리냐’는 질문을 세상에 던지고 싶었다. 그 질문이 외면당할 것을 알면서도 쓰고 싶었다. 예쁘고 좋고 아름다운 것들을 쓰면 좋으련만. 기억나지 않는 그 얼굴들은 내 안에서, 세상 속에서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결국,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이런 소재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 모든 소란스러운 거리의 관찰자인 나는 그 거리를 빠져나가 기차역에 도달했을까. 밤꽃 냄새라는 욕망을 지나 밤송이를 두 발로 지그시 눌러 그 안에 밤을 꺼내먹을 수 있었을까. 어딘가로 향하고 있지만, 지나야 할 풍경이 너무나 저열하고 낡고 외로운 것들일 때 그것들을 뒤로하고 떠날수 있었을까. 그 거리를 떠난 나는 나의 값을 정확히 매겼을까. 제 때에 내렸을까 아니면 내릴 곳을 지나쳤을까. 그런 것에 관해 쓰고 싶은 날이 올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여정이 복잡한 계산이 없는 곳으로의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당신은 과연 얼마짜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