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의 시선과 그 노란 눈

말없는 존재들의 시선과 나의 끝

by 슴도치

논에 백로가 죽어있었다. 그 노란 눈동자가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각도에 따라서 어디든 보고 있을 거였다.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이 가물었다. 올해는 영 힘들다고 아저씨가 말했다. 하지만 이맘때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답도 않고 늘 그 소리였다. 아저씨가 축 늘어진 백로를 건져 올렸다. 그 노란 눈이 더 가까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노란 눈.


시내에 나간 김에 안경을 맞췄다. 요즘 초점이 흐릿해서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시력검사를 했는데 중간쯤부터는 늘 틀렸다. 백로처럼 그 마지막에 있는 것도 잘 보고 싶었다. 요즘 비가 오지 않는다고. 다른 손님이 말했다. 기상청에서 오늘내일 비가 올 거라고 팔리지 않는 안경을 정리하며 사장이 답했다. 비가 와야지 오는 거지. 그 손님은 애먼 진열장만 만지작 거리면서 딴청을 피웠다.


밖은 벌써 어둑어둑하였다. 논에서는 저 멀리 아저씨와 그의 아들이 트랙터에 불을 켜고 일을 하는 중이었다. 밤까지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의 아들과 동갑이었다. 안녕! 그러나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은 내가 예초기를 들고 가는 그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있지만 그는 못 들었는지 아니면 대꾸하기 싫었는지


한쪽으로만 끝까지 걸어갔다.


느티나무가 심어진 길을 따라 지날 때는 하얀 백로무리가 신선들처럼 나무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노란 눈. 낮에 죽은 백로가 모른 척 거기 껴있어도 분간하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내 마지막이 어떨지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아저씨와 아들처럼 내게 아무 대꾸도 없을 것이었다. 집 앞에서는 비가 한두 방울 내리더니 곧 하늘이 으르렁거렸다. 그 소리에 놀란 백로 몇 마리가 날아올랐을까. 아니 그 노란 눈빛만 위아래로 번쩍번쩍했을 것이다.






답을 알면서 질문은 늘 밖을 향해 있다

어느 여름, 논에서 죽은 백로를 본 기억이 있다. 백로는 눈을 감지 못한 채 죽어있었고, 그 노란 눈은 마치 나를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움직임 없이 죽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노란 눈만은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작동했다.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을 다 보는 중지도 몰랐다. 그다음의 기억은 차를 타고 길을 가는데 백로무리가 느티나무 위에 신선처럼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세상을 초월한 도인처럼 거리를 굽어보고 있었다. 내가 백로를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마치 그 반대처럼 느껴졌다.



시 속에 논바닥은 가물었고, 사람들은 무심했다. 말수가 적은 아저씨와,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 없는 동갑내기 아들. 그들 모두는 내가 질문을 던져도 대답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안경점 안에 사장과 손님도 마찬가지다. 자기들끼리 질문을 하고 답을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수용하지 않는다. 나의 질문과 답 또한 매한가지. 그것은 나의 내밀한 질문이고 그들이 답해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늘 외부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고 원하는 답이 나와야 비로소 안심한다. 그것은 왜일까. 나약함 때문일까 무지 때문일까. 간단히 답해줄 이를 또 찾아보지만 찾을 수가 없다. 그때 백로의 눈과 트랙터의 불빛이 함께 나를 비춘다. 혹시 그들은 답을 알까? 또 질문.



풍경은 고요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 속의 나에게는 모든 것이 묘하게 압도적이다. 그것은 자신의 자리가 없는,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자의 시선이다. 현재는 뿌옇고 미래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안경을 맞추러 갔지만 정작 보고 싶은 것은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나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상상하게 되는 걸까.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했을 때, 그 시선은 고스란히 내 안에 '죽음'으로 삽입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할 일이 없다는 데 있다. 더 솔직하자면 하고 싶은 일을 모르겠다는 데 있다.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죽은 듯이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이런, 또 질문.



시력검사 장면은 죽은 백로의 눈과 연결된다. 나는 늘 시력표의 마지막 줄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백로의 노란 눈은 끝까지 부릅뜬 채로 남았지만, 나는 내 시야의 끝을 자꾸 놓친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직접 쓰지 않았지만, 이 시는 '보지 못한 것', '끝을 향한 시선', '답 없는 침묵'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나는 이 시를 통해,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던 것이다. 나의 할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마지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언제나 질문은 있고 답은 없다. 아니 그것은 거짓이다. 답은 이미 명확히 내 안에 있다. 우리가 수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그 답을 체화시키고, 내 마음 깊이 다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 두려운 답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을 벌고 싶어서다.



인체에서 시력이 7할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시력이 가장 직관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백로의 시력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좋고, 나는 시력에 빗대어 내가 가진 답을 시각화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백로와 아저씨와 아들과 안경점 사장과 손님의 침묵은 내 답을 한층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누구에게나 답은 없고 있다. 나뭇가지 위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며 위아래로 움직이는 그 노란 시선 앞에서, 그 초월적인 존재들 앞에서 내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그 죽은 눈과 살아있는 눈들로 나를 한 번 봐달라고 물어보고 싶었던 건,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그 답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기 전에, 한 번쯤은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답은 늘 내 안에 있다. 답을 밖에서 구하려고 하는 건 내 안에 그 답이 너무 두려워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답은 답이다. 내 시선의 끝에 걸린 것이 신선이든, 죽은 백로든 나의 답은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답은 답이다. 정답이 아니라도 그 답은 나만의 답인 것이다.



keyword
수, 일 연재
이전 03화그때, 손가락 사이로 흘러간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