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토끼가 직업을 잃은 이유

몸으로 빗어내는 알, 그리고 당신에게 전달되는 말

by 슴도치


남자는 입에서 알을 토했다. 아직 4개가 더 남았다. 냉장고 앞에 쭈그리고 앉은 채였다. 마침 부활절이었다. 알이 담긴 바구니를 옆으로 치우고 남자는 잠시 누웠다. 하지만 곧 다시 일어나 알을 토했다. 겉옷을 식탁 의자에 걸쳐두었다. 이제 3개 남았다. 남자는 시계를 보았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그는 새벽부터 옷을 미리 갈아입었다. 성격 탓이다. 여자는 남자의 급한 성격을 염려했다. 남자가 다시 알을 토했다. 이제 2개 남았다. 바구니에 알은 10개가 되었다. 남자는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알을 몇 개나 토했을까. 아니면 아직도 침울해 있을까. 남자는 여자의 느긋한 성격을 근심했다. 하지만 이건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남자는 양말 색깔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양말을 꺼내러 가는 순간 남자는 또다시 알을 토했다. 이번 알은 조금 컸다. 그는 간신히 그것을 게워 내었다. 이제 1개 남았다. 양말을 갈아 신으며 남자는 목이 아파 작게 불평을 했다.



휴지로 눈물과 콧물 범벅인 얼굴을 닦으며. 남자는 자신의 신세가 자못 처량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는 거울 앞에 섰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한 번 웃어도 보았다. 바구니가 다 차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남자는 이제야 고민이 되었다. 마지막 알은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다. 남자는 갈아 신은 양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색이었다. 양말은 어쩌면 내밀하면서도 가까운 사람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마음 같은 것이 아닐까.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가 12개의 알이 담긴 바구니를 남자에게 내밀며 말했다. 어제는 미안했어! 그러나 남자는 아직 알이 하나 덜 나왔다. 여자는 잠시 기다리더니 아직이야? 하고 설거지를 하러 갔다. 어제 그들은 저녁을 먹다가 크게 다퉜다. 여자는 울며 나갔고 남자는 냉장고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사실 남자는 아직 여자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시 어제 일을 따지려고 하는데 여자의 작은 어깨가 보였다. 그 순간, 남자의 마지막 알이 나왔다. 그리고 남자는 개운한 얼굴로 바구니를 여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해!








싸운 다음 날, 사과하고 싶은데 도무지 알맞은 타이밍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그게 아니다. 감정이 엉켜 있고, 말이 목구멍에 걸려 있기 때, 진정한 사과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아직은 상대보다 내가 더 불쌍하다고 느끼니까. 사과란, 여유가 없을 때 하는 말이다. 내 고통보다 상대의 고통이 더 커 보일 때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툭, 알이 나온다. 아니 말이. 그리고 그 말은 어쩌면 ‘알’ 같은 형태일지도 모른다. 말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형태도 없는 그것이 세상 그 무엇보다 형태가 있는 것처럼 나를 찌르고 안아주고 때리고 보듬는다. 때론 너무 많고, 때론 너무 적고, 하고 싶지 않을 때는 목구멍 끝에서만 맴돌다 삼켜지고 만다. 그러니까 말이 알이 되고 부화된 알은 또 말이 된다. 그런 말은 어렵다고 당신에게 타박을 듣기도 한다.


"미안해"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커다란 강 하나가 만들어진다. 어떤 사람은 그 강을 건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 강은 더 깊고, 폭은 더 넓어진다. 그리고 그만큼 몸은 굳고, 관계는 멀어진다. 나는 시간 낭비와 감정 소모를 극도로 싫어해서 불만과 사과는 곧잘 말로 하는 편이다. 하지만 어느 때는 그 모든 것을 표현해도 속이 꽉 막혀서 해결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뱃속에 무거운 돌들이 담겨있는 것처럼 묵직해서 몇 끼나 굶는다. 헐, 공짜 위고비.



그래서 나는 상상했다. 꽉 막힌 감정이라는 게 돌이 아니라 알처럼 만들어서 꺼낼 수 있다면 어떨까. 돌은 쓸모가 없지만 그 나쁜 것들이 동그란 알이라는 좋은 말이 되어서 상대방에게 선물해 줄 수 있다면? 분노, 슬픔, 자존심, 후회, 망설임 같은 것들을 조금씩 반죽해 동그랗게 만들어 정성스레 바구니에 담아 상대에게 건넨다면? 그건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변화의 기록이 될 것이다. 그런 것은 단순한 사과보다 백배, 천배는 낫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하는 감사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 아팠던 시간들이 단순히 부정적인 순간이 아니라 변화하는 긍정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 쓸모도 없던 것들이 쓸모가 생기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부활절 토끼가 직업을 잃은 이유』는 그런 상상에서 출발했다. 사과의 말이란, 알을 배달하듯 툭 던져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부화장의 닭처럼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만들어내야 하는 것. 즉, 가내수공업이다. 재료도, 제작도, 검수도 전부 내가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변하고, 조금 덜 나쁜 사람이 된다. 시에서의 알은 몸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이 시는 몸으로 쓴 시다. 감정이 말이 되기까지 겪는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고통, 그 무게를 가볍게 말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당신을 위해 내가 변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사랑을 함에 있어 가장 좋은 순기능은 무엇일까. 뜨겁게 불타오르는 감정?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최소 2인분 시키는 식당에 마음껏 갈 수 있다는 것? 아니다. 그것은 내가 상대방 덕분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겨날 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자극과 영향을 주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나는 인간의 진정한 발전이란 내면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계기와 동기부여는 결국 사랑인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지난한 과정은 쓸데없는 시간낭비와 감정소모가 아닌 것이 된다. 상대에게 좋은 알을 몇 바구니씩 갖다 주었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속으로 쌓고 만들고 다듬었냐는 의미가 된다. 그 나쁜 태도와 감정과 기억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좋은 것으로 치환시킬 수 있을 때, 이제야 겨우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바구니를 건넬 때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지 '미안해'가 아니라 '이게 나야. 그리고 더 나은 모습으로 당신 앞에 서고 싶었어'라는 고백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부활절은 한참 지났지만, 날짜가 뭐 중요한가. 우리는 늘 죽고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죽음은 비록 타인의 의해서일지 몰라도 부활은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침묵에서 다시 살아 있는 말로.

알에서 말로, 말에서 다시 알로.


나는 또다시 당신에 덕분에 새롭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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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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