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개의 말과 천 마디의 손

다른 언어, 다른 우주 그리고 사랑

by 슴도치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분명 입을 열고 말을 하는데 그 언어는 내 것과 달랐다.

악다구니로도 들리고 노랫소리로도 들리고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있지만 멀리 떨어진 사람들 같았다.

내가 아무리 불러도 당신은 저편에 사는 섬사람 같았다.

나는 헤엄을 칠 줄 몰라서 당신께 갈 줄을 몰랐다.


다시 당신이 말을 하고 나는 입술 모양을 읽었다. 사랑밖에 방법이 없었다.

해가 뜨거운 여름날, 공터에 서서 가만히 마주 보고만 있는 사람들처럼

부단히도 애를 쓰는 방법밖에 몰랐다. 정수리가 뜨겁다 못해 작은 허공이 되었다.


우리는 더 말하기를 그만두고 손가락으로 서로의 얼굴선을 따라 그렸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형태를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는아무말도하지않고서로안고하나가되었다.몸의선이하나로합쳐져두개의선이하나가되고밀접한두개의세계가하나의세계가되고하나의폐로숨을쉬고하나의심장으로혈액을만들고이제는언어같은것은하나도상관이없었다.나는당신의숨결과온기와의도를알았다.우리의우주를만들고섬을만들고거기에새로운우리가생겨나고밥을먹고온종일둘이서죽음이되고삶이되고울고웃는것같았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사랑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것이 우리의 막다른 골목 같은 해답이었다.


당신이 내 손을 잡았다. 흠뻑 헤엄쳐 온 그 손이

그 손이 천 마디의 말처럼 내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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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다르다는 건, 우주가 다르다는 뜻


나는 말로 설명하는 사람이다. 감정을, 마음을,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 관계와 관계의 간극을 시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당신은 너무 어렵다. 우리에게는 말로 풀리지 않는 순간이 너무 많다. 사랑은 언제나 ‘말’ 이외의 영역에서 시험받는다. 우리는 수없이 설명했고, 수없이 오해했고, 때로는 말이 많아서 실패했다. 그때 깨달았다. 진짜 사랑은 말의 바깥쪽에 있다는 것을.



당신, 정말 벽창호 같아. 그런 소리를 중얼거리게 된다. 벽창호라는 말의 어원은 평안북도의 벽동군(碧潼郡)과 창성 군(昌城郡)을 의미하는데 이 두 지방의 소가 덩치가 크고 성질이 억세다는 뜻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고집이 세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을 벽창호라고 한다고. 나는 그 두 지역의 사는 소가 우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소들도 말이 통하지 않아 만나면 대가리를 박고 싸웠을까.



상대를 이해하려고 해도 말이 도통 이해되지 않고 내가 내민 말이 당신에게 전혀 닿지 않는 것 같은 날. 당신은 나를 향해 입을 열지만, 그 말은 악다구니처럼 들리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럴 땐 문득, 우리가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구나 싶다. 나는 이 섬에, 당신은 저 섬에 사는 사람들처럼. 게다가 당신의 그 답답한 표정도 내 눈에 들어온다. 나 저 표정 알아. 그래,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이잖아.




사랑만이 번역기이자 유일한 세계의 문법이다


젖은 옷을 입고도 가만히 마주 앉을 수 있는 일. 말이 필요 없는 밤에, 그저 당신의 손을 지긋이 붙잡고 머무를 줄 아는 일. 화해를 강요하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일단은 이유 없이 다정해지는 일. 그것은 인내심과도 관계가 있다. 인내심은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고, 마음의 여유는 마음의 힘이고, 마음의 힘은 마음의 연료에서 나오고, 마음의 연료는 사랑에서 나온다. 우리가 서로를 인내할 수 있을 때, 언어는 비로소 필요 없어진다.


그렇게 언어의 빈자리를 손이 대신한다. 그것은 연인의 손일 수도 있고, 가족의 손, 친구의 손, 혹은 내 손을 붙잡는 내 손일 수도 있다. 말이 실패할 때 손이 말이 된다. 나를 껴안는 익숙한 온기가, 그 사람의 살 내음이, 심각한 나를 단박에 웃게 만드는 웃음소리가, 괜찮다고 다독이는 그 리듬이,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그 손길이 ‘나는 아직 너를 포기하지 않았어’라고 말해준다.



나는 헤엄을 잘 못 치기에 당신에게 도달할 줄도 모르겠다. 그 말은 곧 당신의 감정과 언어에 닿을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모든 단절을 무릅쓰고도 기어코 나를 물가에 세운다. 저편의 섬을 바라보게 한다. 당신이 있는 곳을 짐작하게 한다. 당신을 이해하고 싶다. 당신의 언어를 듣고 싶다. 결국 우리의 방법은 사랑뿐이 없다. 당신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나 역시 당신을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온전히 사랑할 수만 있다면 괜찮다. 서로의 말이 전혀 닿지 않아도, 어쩌면 그것이 더 진짜에 가까운 건지도 모른다. 진짜 사랑은 '이해'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당신과 나의 그 손이

오늘도

우리 둘만의 우주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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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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