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첫날, 외국어의 영역

오답인 듯 정답인 우리

by 슴도치

남자는 여자를 다시 지긋이 쳐다보았다. 마치 시험공부를 하는 아이처럼. 천천히 하지만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그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었고 사위를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다행히 보름이었다. 그녀의 미간이 달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했고 그는 한마디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것은 먼 이국의 언어였고 이 근방에 남자의 집 말고는 이차선 도로와 흙먼지, 선인장 밖에 없었다. 다시 남자는 여자를 공부하듯 쳐다보았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원래 독학이란 힘들지 않은가. 여자는 남자를 향해 빙긋 웃었다. 남자의 눈에 작은 별이 반짝하는 것 같았다. 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자가 모국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립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곡조였다. 남자는 침대에서 반쯤 일어난 채 다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자신의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트럭 불빛이 벽을 할퀴고 지나가자, 여자는 겁에 질려 입을 막았다. 남자가 창가로 다가가 트럭이 짐을 싣고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냥 짐차야. 남자가 말했지만 여자는 놀랐는지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남자는 부드럽게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그냥 짐차야. 그녀 당황했지만 곧 남자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다시 빙긋 웃었다. 오, 저 별똥별. 남자는 이제 답을 적기로 결심을 했다. 그는 여자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남자는 그녀의 국경선이 되어주기로 하였다. 그들은 침대에 마주 앉아 공부가 끝난 학생들처럼 한참 동안 서로를 채점했다. 답이 없지만 틀리지도 않는 시험이었다. 다시 트럭이 요란스럽게 도로 위를 지나갔지만 두 사람 모두 꼼짝도 하지 않고 서로의 나라가 되어주었다.







돌고 돌아 돌아오는 당신의 언어


요즘 언어에 대한 불신이 깊다. 그래서 자꾸 이런 시를 쓰는가 보다. 어렸을 적에는 진심으로 대화를 하면 해결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할 기회도, 이해도, 인내심도 적어진다. 분명 서로 같은 나라의 언어로 대화를 하지만 알아들을수록 못 알아듣고 싶어지는 충동은 왜일까. 내 말이 당신의 교과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신은 자기 노트로만 공부를 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우리는 서로에게 낙서뿐인 말만 늘어놓는다.



당신의 언어를 배우고 싶다. 나는 외국에 사는 유학생처럼 절박하다. 아무 말도 알아들을 수 없고 문화도 풍습도 모르겠다. 심지어 기온도 다르다. 나는 여름에 에어컨을 켜야 하는데 당신은 더워도 에어컨 바람은 싫다고 한다. 한 번은 내가 땀을 뻘뻘 흘리고, 한 번은 당신이 이불을 꽁꽁 덮고 있는 식이다. 우리의 언어와 비슷하다. 알아들어도 이해는 되지 않는다. 그 나라의 말을 모르면 언성이 높아진다. 그렇게라도 내 말이 전해지라고. 진심은 그게 아닌데 나는 시장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흥정을 하듯 늘 주먹구구식이다.



오늘도 당신과 다퉜다. 당신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나도 당신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 잘 알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자신의 말로만 떠들었다. 나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고 당신은 아무것도 못 알아듣는다는 듯 자기 할 일만 한다. 우리는 잘 그어진 평행선 같다. 마지막까지 만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조금씩 각도가 꺾여서 도화지 끝에 가서는 만나게 될까. 그럼 나는 그 꼿꼿하게 놓여 있는 자를 손으로 툭 치고 싶어진다.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본전도 못 찾고 마음만 잔뜩 상하기 때문이다. 마치 상장폐지된 내 주식처럼,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옳을까? 말이 통하지 않으면 바디랭귀지라도 해야 되는 것이다. 아무 말이라도 일단 배운 단어를 용기 있게 뱉어내보는 것이다. 상대의 언어를 배우는 건 일단 부딪히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상대가 못 알아들어도 꿋꿋하게 일단 그 나라의 언어를 말해보는 것이다. 그런 노력에 상대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도와주고 싶게끔 하는. 그런 마음이다. 우리는 서로를 안쓰러워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언어로 욕 좀 먹으면 어떤가. 어차피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긍휼해야 한다. 그가 고생하는 건 결국 라는 머나먼 나라를 만나서니까. 국밥이 땡겨도 가끔은 파스타도 먹어주고 에어컨을 틀고 싶어도 선풍기로 대신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쌍한 당신과 나를 위해.

우리가 서로의 손등에 입 맞추고 서로의 나라가 되어준다면

그깟 언어 하나쯤 몰라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서로의 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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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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