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의 자리<진짜의 자리
저녁의 중식당은 바빴다. 우리 넷은 미리 방을 예약해 두었다. 계산대 바로 옆 방이었다. 1은 그전에 나쁜 일이 있었는지 말수가 적었다. 3은 방학이 시작해도 공부로 바빴다. 2는 회사 휴무일에 대해 불평했다. 대화는 드문드문 끊겼고 그러다가 요리가 나왔다. 하지만 술잔도 젓가락도 주지 않았다. 나는 방 밖으로 나가서 종업원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빈 테이블로 가 젓가락도 술잔도 챙겨서 돌아왔다. 셋은 나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돌아오자 겸연쩍게 웃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우리는 막 출발한 기차를 탄 사람들처럼. 천천히 웃고 떠들었다.
조금 있다가 다른 요리를 가져온 종업원이 내게 무슨 말을 했는데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젓고 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 중에 셋은 먼저 나갔다. 유리창 너머로 그들이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꽤 심각하게 보이고,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는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계산을 마친 내가 밖으로 나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시킬 일 없는 종업원처럼. 내가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고 때마침 마감을 마친 식당 불빛도 시커멓게 꺼져버렸다.
가짜의 자리. 그 쓸데없음
함께 있지만 ‘벗어나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분명히 좋은 사람들이고 나와 깊은 관계인 사람들이지만 대화하는 동안 한 번도 내가 옆에 없는 느낌. 잠깐 자리를 비우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썩 좋은 이야기 같지는 않다. 아니면 내가 일부러 쓸쓸하고 싶어서 만든 자학 같은 착각일까. 그것은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쓸쓸한 느낌이다. 마치 혼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처럼. 레인 끝까지 와도 남는 건 내가 만든 흰 물결 자국밖에 없다.
너무 사소한 감정은 말로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어젯밤 모기한테 물렸어’라는 말보다도 힘들다. 친구에게 ‘나랑 있으면 편해?’라는 말을 물어볼 수 있을까? 잘못된 건 아니지만 순간 거부감이 드는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진심을 실제로 듣게 된다는 건 하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에게 부담이니까. 그런 당연한 말도 꺼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진심을 추리하고 유추해 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또다시 지독하게 외로워질 수도 있다.
그것은 꼭 친구들과의 문제에서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도, 거래처에서도, 자주 가는 단골 빵집에서도 그런 느낌은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친분이 있고 신용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돌아오는 싸늘한 대답과 표정. 그런데 당신이 뭔데?라고 묻는 듯한 말투. 당연히 내 자리라고 여겼던, 당연히 누려야 했던 권리에서 추방당하는 느낌. 전부 내 착각이었나 싶은 자조감. 오늘도 많이 바쁘신가 봐요? 하고 웃으며 물었는데 돌아오는 차가운 눈빛.
삶이란 결국 내 자리를 찾아가는 시간
이 시에서는 말이 없을수록 더 선명해지는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모든 장면이 말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그 불투명한 언어의 진심을 포착하고 있는 주인공은 조연처럼, 계산대 옆 방, 혼자 챙기는 젓가락, 지나쳐버리는 종업원 등 배경이자 무대 바깥에 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어느 한순간에 우리가 그러하듯이. 나는 정답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 서성임과 그 정적을 받아들이는 용기에 대해 ‘과연 할 수 있겠어?’라고 묻고 싶었다. 그저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대신, 상처받는 사람의 침묵과 감정을 말하고 싶었다.
그들 사이에 내 자리가 없어도 괜찮다. 내 자리는 결국 내가 딛고 있는 이 땅 위. 그러니까 불 꺼진 식당 앞 그들이 떠나버리고 난 뒤의 이 적막함부터가 내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슬픈가? 아니다. 진짜 슬픈 건 진짜 자리를 얻기도 전에 이 땅 위에 자리에서 물러나 땅 속의 자리로 돌아갈 때다. 그전까지 가짜의 자리를 깨달아야 한다. 쓸데없는 사람들과 상황과 착각을 버리고 진짜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 여정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시간을 준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어두운 자리를 벗어나려고 걷는다. 왜냐하면 내 자리는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고 그러므로 아직 슬플 이유 따위는 없으니까. 저기 어딘가, 내 자리를 맡아서 기다려주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그러니까 외로워하지 말자. 지구는 둥글고 묵묵히 걷다 보면 우리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자리에서 적확하게 만나게 되어있다.
앞으로, 또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