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몸이 아플 때 특히 그렇다. 열네 살 무렵 시작된 편두통은 예고 없이 위경련과 함께 찾아와 일상을 정지시킨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 한 방울씩 떨어져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까지도 그 감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숨죽여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 간다.
[흰] 서문 중에서
한강의 글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20대에는 윤대녕, 은희경, 김영하와 같은 사람들의 글을 줄창 읽었고, 이후엔 천명관의 [고래]라든지 천운영의 [바늘], 김애란, 정유정의 소설을 인상 깊게 읽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매해 사서 읽었고, 오늘의 작가상, 무슨무슨 상을 받은 작품은 챙겨 읽곤 했다.
한창 책을 읽던 시절에 가리지 않고 읽던 소설 중에 한강은 읽어야만 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었지만, 내 취향의 글은 아니었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전국민이 한강의 글을 다시 읽어보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의 과거 인터뷰나 다큐, 행적을 돌아보며 우리가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왔다며 감탄했다.
집에서 책장을 뒤젂여보니 한강의 [검은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내 여자의 열매]가 나왔다.
어느 시절에 산 책인지도 기억조차 나지 않을만큼 누렇게 바래고 오래된 책들이다.
이렇게 보면 한강은 시나브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흰]의 서문에서 한강 작가가 밝히듯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으로 무모하게 들어가 앞으로도 우리에게 그의 세계를 더 넓고 깊게 펼쳐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