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월 17일
행원리 주민 윤00(27), 이00(32), 채00(22), 강00(21), 고00(20)는 1949년 1월 17일(1948년 12월 19일) 마을초소 경비를 서면서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불을 지피고, 고구마를 구워 먹다 보초막에 불이 붙어 불을 껐는데, 군인들이 무장대들과 연락하는 봉화라 오해하여 희생자를 현장에서 총살했다.
※ 『제주 4·3 유적 Ⅰ』, 2020, 692쪽
내만이왓은 내만이란 사람의 소유였다는 데서 그 지명이 비롯됐다. 1949년 1월 18일, 마을 주민 6명이 곱은재우영 남쪽 내만이왓으로 끌려와 총살됐다. 이날, 주민들이 연대봉 아래쪽에 성을 쌓고 보초를 서던 중 너무 추워 불을 지핀 것이 초소로 번지자 제2연대 3대대(서북대대)소속의 월정리 주둔 군인들은 그것을 ‘무장대에 보낸 봉화 신호’라며, 당시 보초 근무자들을 학살했다. 이때 학살된 사람은 강00(21, 남) 등 6명이었다.
1월 중순, 매우 추운 날이었다.
당시는 지금보다 더 추운 날들이 계속 되었겠지.
어떻게든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보려 불을 지폈을 것이다.
고구마가 얼른 익기만을 기다리며 불을 바라보고 있었겠지.
아차, 그런데 그 불이 보초막에 붙어 일을 낼 줄 누가 알았을까.
배고픔이 원수다.
추위가 원수다.
시절이 원수다.
보초막에 있던 이들은 산에 있는 무장대에게 연락한 불이 아니냐며 바로 뒷밭에 끌려가 총살됐다.
그 와중에 총살당한 이 중 윤00은 보름 동안 목숨이 붙어 있다가 고생을 하다 결국에는 죽음을 맞았다.
죽음조차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