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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 우리들의 오지 않은 밤

현택훈, 「밤식빵」, 『마음에 드는 글씨』, 한그루, 2023.

by 겨울집

밤식빵


현택훈



빵 속에 밤이 들어 있습니다.

밤은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밤은 오래되고 희미한 길을 만듭니다.

그 길로 나는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그 길에는 낯익은 버스 정류장도 있고

봄바람도 붑니다.


밤식빵은 밤입니다.

아침이 올 것도 같지만

유통기한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도 같지만

이대로 밤나무 한 그루 드리우고

밤의 세계에서 모든 파도를 맞이합니다.

그것이 밤식빵의 길이라면

그 길에서 아주 오랫동안

지친 버스 한 대를 기다리면 좋겠습니다.


이미 지나버려 다신 오지 않을

버스가 저 먼 수평선 너머에서






이 시에서 밤은 먹는 밤, 하늘의 밤으로 나뉜다.

이 밤, 기다리는 밤은 밤식빵의 밤일까.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리 삶의 밤일까.


밤의 세계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모든 파도를

우리는 지친 버스 앞에서 기다린다.


수평선 너머 우리들의 오지 않은 밤,

희미하고 오래된 길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간

우리가 만나게 되는 진짜 알맹이.


그 밤은 어떤 의미일까.

아침이 와야 이 밤의 의미를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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