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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창비

by 겨울집


오래전 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래도록 잊고 지냈다.

얼마 전 큰아이와 열두 살 차이가 나는 셋째 아이를 낳은 후배와 밥을 먹기로 하고선 나가려는데, 후배가 카톡으로 물어왔다.



언니, 혹시 [일의 기쁨과 슬픔] 읽었어요?

어디서 들어보긴 했는데, 나 요새 책 안 읽어. 드라마만 봐.

최근에 나온 건 아니고, 장류진이라는 작가가 쓴 건데 언니가 좋아할 스타일 같아서요.

그건 안 읽었나 보다. 기억에 없네.



후배를 만나 점심을 먹고, 책 선물을 받았다.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첫 장을 넘기고 빛나 언니라는 인물이 나오자, 어 어디서 본 듯한 데라는 느낌이 스멀스멀.

소설집의 두 번째 작품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며, 어어 이건 확실히 읽었던 책이네.

세 번째 작품,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를 읽는 순간, 아 맞다. 이 작가 참 문장이 괜찮다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 싶었다.



이미 읽었던 책이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다시 읽는데 쭉 읽어나가는 내내 지루함이 없었다.

새 책을 읽는 기분도, 헌책을 읽는 기분도 아닌, 나의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면서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작가는 이 소설집의 작품들을 회사에 다니면서 썼다고 한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연차나 반차를 내고 소설을 쓰고,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물리적인 결과물이 확실하게 나오는 회사 일을 하면서 위안을 얻었다고 하니, 소설과 일에서의 균형이 작품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은 작가의 루틴 덕분이리라.



장류진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평범한 직장인과 그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의 수혜를 입고 살면서, 자본주의의 공격을 가장 최전선에서 받는 이들이 그려내는 세상은 그렇게 암울하지도 그렇게 발랄하지도 않다. 무덤덤하게 인물들의 자아를 그려내는 동안 독자가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해왔던 어떤 이들의 형상과 닮았다는 것이다.



작품을 읽다 피식 웃었던 장면(일의 기쁨과 슬픔)

우동마켓이라는 곳에 게시물을 엄청나게 올려 새 제품을 판매하는 닉네임 거북이알의 속사정이 회사 대표가 화가 난 나머지 월급을 포인트로 지급하는 바람에 포인트를 돈으로 전환하느라 그런 거였다는 것.

회장이 화가 난 이유가 인스타에 게시물을 제일 먼저 올리고 싶어서였다는 것.

우리 시대에 SNS가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어떤 이들의 일상과 삶에 대한 태도를 그려내는 담담한 문장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예전에 스쳐 지나간 오래 빠져 있었던 어떤 작가들을 떠올리게 하는 접점이 없는 것이 장류진 작가의 신선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 작가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보여 줄지 기대하게 된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쓰면서, 자꾸만 일의 슬픔과 기쁨이라고 자판을 치게 된다.

그것은 내 마음이 그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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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수필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2020년 11월 21일, KBS 드라마 스페셜 -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소설을 드라마화하여 방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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