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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Aug 08. 2023

너는 전화 받잰, 대학 나와시냐?

어느 날의 나에게

  

20여 년 전 PCS 회사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다닌 적이 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과도기 시점이었고, 016과 018이 합병을 하고 한국통신과 합쳐지기 전 시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이었는데, 수업은 다 채웠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어찌하다 그렇게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녹색 유니폼을 입고 근무를 했더랬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아웃바운드를 하고, 고객을 응대하고, 은행 마감 무렵에는 은행에 가서 그날의 금액을 입금하고.


PCS 회사에서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팀장들은 성장하는 회사를 놔두고 왜 저물어가는 회사로 가려 하냐고 나를 말렸다. 글쎄 그때 그 어린 눈에 어떤 회사의 성락이 보이기는 했을까.     


1년 가까이 그렇게 성장하는 그 회사에서 근무하다 한국통신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서는 고장접수, ADSL 고장접수 등을 전화로 받아 해결하는 역할이었는데, 꽤 잘했던 듯싶다. 다른 이들이 하루에 30여 통을 받을 때 난 60통은 거뜬히 해결했으니까. 두 달여 일하다 그만둘 때 팀장이 ACE가 그만두면 어떻게 하냐며 퇴사를 말렸다.      


하지만, 내가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국통신에서 근무하던 동네 아저씨의 한 마디 때문.    

 

“너는 전화받잰, 대학 나와시냐?”     


생각지도 못하게 망치로 머리를 퉁 하고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런 일을 하려고 공부를 한 것이 아니었는데, 이런 일을 하려고 꿈을 꾸고 나의 미래를 만들어왔던 것이 아닌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지?     


그때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삶을 일궈나가고 싶었는데, 자꾸 빙빙 돌아 다른 길로 나를 몰아갔던 것 같은 느낌. 그렇다고 그동안의 경험이 전혀 쓸데없다고는 느껴지지 않았고, 그동안 겪어온 다양한 경험은 어떻게든 나에게 자양이 될 것만 같았다.      


아저씨의 말을 들은 다음, 도저히 그 회사를 계속 다닐 수가 없어서 우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와 일을 병행하면서 나는 다른 길을 슬슬 준비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과정은 끝까지 해내려 했지만,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마지막 논문 과정 앞에서 아이가 생겨 접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다시 손을 대면 금방 끝마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사람의 일이 어디 뜻대로 흘러가던가. 닥쳐 있는 일들을 해결하느라 어느새 20년 가까이 마지막 과정을 해결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그 과정을 겪고 해결해 나가는 걸 보면서, 이제쯤 다시 시작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아직은? 아직도? 난 시작할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 모르겠다.     


아직도 소설은 시작하지 못했고, 논문도 역시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 안의 열기가 그대로 사그라지었던가. 아직은 포기하지 못했기에 망설이고 있는가 보다. 나의 인생 키워드는 늘 성장과 발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든 나아가는 발걸음을 끊임없이 뻗어왔는데, 가도 가도 갈 길이 멀다.     


그때 그 아저씨의 말을 허투루 듣고 그냥 넘겨버렸다면, 나는 아직도 그 어떤 자리에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그대로 머물러 있었을까. 아니다.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어떤 계기로든 내가 지금까지 흘러온 길을 다시 걷고 있었겠지.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어느 곳에서도 배울 것은 있다. 그래서 주어진 일에는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려 노력해왔다. 앞으로의 나의 삶도 그렇게 어떤 길을 향해 나아가겠지. 


오늘도 오늘의 할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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