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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Feb 07. 2021

미루지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안되는 이유 말고 이거 아니면 안되는 이유에 집중해


전환점 1. 세계청년대회 WYD

회사 계약직 시기에 퇴사를 불사하고 연차를 몰아써서 폴란드 세계청년대회를 질렀다. 

3~4년에 한 번 개최되고, 만 30세까지 신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 올림픽처럼 개최국, 개최지가 선정되면 전 세계 천주교 청년 신자들이 모여 축제처럼 같이 미사도 드리고 성지순례도 다니고 행사에 참여하면서 교류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외여행도 가보지 못했던 내가 29세 여름, 덜컥 신청했다. 

회사에 얘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2년 무난하게 다니면 정규직 전환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전환률이 낮은 회사였고 사람에 대한 배려는 커녕 몰인정한 곳이어서 마음 고생을 많이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돈도 시간도 질러버렸다.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20대 내내 버킷리스트에 잠들어 있었다. 20대 초반, 중반에는 돈이 없어서... 그리고 이 시기에는 돈은 있지만 정규직 전환이 간절해서...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댄다면 몇가지든 댈 수 있었다.


너 지금 그렇게 연차쓰고 눈밖에 나면 정규직될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수도 있어.

사서 고생하면서 꼭 그렇게까지 가야할까? 그냥 여행으로 갈 수도 있는데

지금 모은 돈 얼마 되지도 않는데 다 털어서 가면 돈은 언제 모으지?


천주교 집안이어서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신앙생활에 대한 의문, 다시 말해 갈증이 있었다.

이 여정으로 인해 이러한 갈증, 고민들이 해소됐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함께 여행을 다녔던 사람들은 살아온 배경, 성향, 하는 일, 나이, 성별, 사는 지역 다 달랐지만 3주간 함께 하면서 서로 융화되고 알아가고 깊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우리의 계획과는 다르게 상황들이 전개되어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모난 부분들이 깎이고 또 더 좋은 경험, 귀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고생도 많이 했고 갈등도 많았지만 그만큼 신앙적인 체험도 많이 하고 성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각자가 만난 하느님을 알 수 있었고 그들의 신앙생활, 믿음을 보면서 신을 믿지 않는 세상 분위기 속에서도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또래들이 있었구나 알게 되었다.  

이때 인연으로 여러 기회들이 열렸고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직장에서의 마음가짐 등 삶에 대한 관점과 삶의 중심이 바뀌게 되었다.


전환점 2. 할머니

삼 년전, 할머니가 뇌경색 증세를 보이셨다. 내가 출근하려는 중에 갑자기 주저앉으시더니 말을 하지 못하셨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함께 살아왔고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사랑으로 살림을 하시며 뒷바라지 해주셔서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다. 응급실에 빨리 가야한다는 생각에 119에 전화를 해서 할머니를 모시고 인근 종합병원에 갔다. 그날 정말 머리가 하얘졌고 할머니와 이제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좋지 않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고 온 마음을 다해서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간병했었다. 

사랑을 받는데만 익숙하고 표현하고 챙기는 것은 미숙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제는 미루다 후회하지말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 다짐했다. 할머니가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하던 지병들도 다 밝혀져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 사랑으로 내가 이렇게 성장했구나 돌아봤고 또 내가 이렇게 누군가를 극진히 돌볼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구나를 새삼 깨닫게 됐다. 

인생에서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불현듯 닥쳐온다. 내 힘으로 막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내가 함께하는 순간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는.

할머니가 아프시기 몇 달전, 무리해서 장미공원을 다녀온 것에 감사했다. 옆 동네 장미공원에 나들이 가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그 때 할머니가 건강한 모습으로 웃으며 노란 장미꽃과 함께 사진을 찍었던 모습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아리다.

당연하게 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그렇지 못하게 되기 한다.


나중에 할머니한테 효도해야지. 잘해드려야지. 집안일 내가 많이하고 할머니 덜하시게 해야지. 할머니랑 할머니 고향에도 놀러가야지. 할머니랑 여행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카페도 가고. 할머니께 맛있는 음식도 해드려야지. 


할머니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었던 일들 중에 그렇지 못하게 된 게 많아져서 속상하지만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있고 함께 웃고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 시기를 지나오면서 내가 가진 돈과 시간을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쓸 수 있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마음과 정성을 쏟게 되었다.

 

전환점 3. 독립.

한 달전, 독립을 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나는 내가 속한 모든 곳에서 새우등이 터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를 구해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했다. 퇴사 또는 이직이 먼저냐, 독립이 먼저냐 고민하다가 독립을 먼저 감행했다. 영하의 추위, 코로나라는 위험요인 모두 나의 독립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기에... 내가 바뀔 힘이 없으면 상황을 바꾸어야 겠다는 생각. 

무기력과 강박과 불안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이때도 독립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들이 있었다.


생활비, 대출이자가 나가서 돈을 못 모은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혼자 살면 주변에 케어해줄 사람도 없는 상태여서 더 안 좋아질 수 있다.

내가 가족 간 갈등을 중재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나가게 되면 어쩌나.


내가 그동안 모아놓은 돈 전부와 은행대출금, 카드 할부 그리고 어머니께 약간의 도움을 받아서 독립을 할 수 있었다.

나오기 전에는 내가 과연 밥을 잘 차려먹으며 내 자신을 잘 챙길 수 있을까,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을까, 원룸이면 답답하지 않을까, 혹시나 구한 집이 별로고 여러 문제들이 생기면 어쩌나 별별 걱정이 들었는데.. 웬걸. 마음이 너무나 평온했다. 

내가 간절히 원한게 이거였구나 싶을 정도로.

천주교에서는 세상을 피해서 외딴 곳에 머물며 하느님 안에서 고요히 쉬는 '피정'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피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고요하고 집중이 잘되고 스스로를 놀라울 정도로 잘 돌보고 있다. 집안일을 몰입해서 할 정도로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생활 안에서 기도도 잘 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들과도 건강한 거리감이 생겼다. 뭐라고 표현하긴 어렵지만.

내가 나를 책임지고 돌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또 내가 그동안 꿈꾸던 나만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면서 마음이 든든해지고 할 수 있다는 힘이 붙은 것 같다.


시간은 유한하고 선택에는 매몰비용이 존재한다.

여러 가지 따지다 보면 선택을 미루거나 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후회를 하거나 미련을 못버려서 과거에 매여 있거나 미래만을 바라보면서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하게 된다.

미루지말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선택하고 마음을 다해 그것을 이루고 추구하다 보면 그 선택이 또 좋은 길로, 좋은 인연으로 이끌어주고 나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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