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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이상하고 귀여운 소리지만






 여덟살 정연이와 경제수업이다. 철나라, 쌀나라, 종이나라가 서로 연합해야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된다며 경제, 정치 통합의 대표적 EU, NAFTA, ASEAN 등을 공부했다. 동화책 말고 전세계의 진짜 철 나라와 쌀나라, 종이나라는 어디인지도 살펴보며 종이나라는 캐나다, 쌀나라는 중국, 철나라는 러시아, 커피 나라는 콜롬비아, 다이아몬드 나라는 아프리카 라고 아이들에게도 소개한다. 책을 읽을 때마다 재미있어서 나는 신나게 설명을 하는데 그에 반해  정연이는 한 시간 수업이 좀 힘들었던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눈동자도 자꾸 돌아간다. 결국 하던 공부를 멈추고 우리도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기로 했고 정연이가 꽃나라를 만들어보자 제안했다. 네덜란드를 잠깐 공부한 후 본격적인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하는 정연이는 눈이 금세 초롱초롱해져서 오른손에 사인펜을 쥔 채 묻는다.  "선생님, 수도는 뭘로 할까요? 국기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꽃나라 화폐니까 나뭇잎이나 꽃잎으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화폐단위는 '잎'으로 하고 빨간 단풍잎은 비싼 돈, 노란 은행잎은 조금 비싼 돈, 초록잎은 조금 싼돈 어때요? 애벌레 기차가 지나다니게도 할래요" 등 그동안 경제수업에 공부했던 것들을 총출동시키기도 하고 꽃과 나뭇잎으로 만든 남자와 여자 의복도 만들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좋은 곳뿐 아니라 메마른 땅도 보인다. 초등학생인데도 심오하고 다채롭다. 나도 옆에서 그려보았는데 그냥 간단하고 깔끔할 뿐 이야기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는 않더라, 아이들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또 한 번의 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부분들이 요즘 소설을 봐서 그런지 크게 다가왔다. "정연아 이러다가 동화나 소설 한 편이 나오겠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고 우리는 요즘 동화책을 만들고 있다. 학부모님은 아이가 좋아하니 선생님 뜻대로 하라고 하셨다. 경제수업인데 자꾸 경로를 이탈한다. 정연이의 그림과 꽃나라 이야기를 들으며 400페이지 베스트셀러 소설들도 이렇게 작은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게 얼마였을까 돌아보며, 이제라도 아이들의 이상하고 귀여운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 다짐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부모님께 수업 브리핑을 드렸다. 나는 약간 흥분을 하며 "어머니, 어머니! 오늘 꽃나라를 만들었는데요, 이건 이거고요 저건 저렇대요." 정연이는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들으며 약간 우쭐해하고 있었고 엄마의 칭찬을 기다리는 듯했다. "어머 정말요? 우리 정연이 가요?! 정연아 정말 정말 잘했다. 역시 우리 딸 최고 최고!!"라고 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네네, 아 그래요?"라고 반응만 할 뿐 아이의 상상력과 표현력이 나만큼 와 닿지 않아 보이셨다. 학부모님은 직장맘이고 정연이와 둘째 정윤이가 있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이모님이 계시지만 육아와 직장일에 여력이 없는 듯 보였다. 이성적인 분이셨고 성격도 조용하고 얌전하시다. 오버하며 반응하실 성격도 사실 아니었다. 엄마의 반응에 약간 실망한 표정의 정연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던 내가 괜히 미안해지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정연은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덧셈과 뺄셈을 좀 어려워하고 가끔 간단한 연산도 실수를 종종 한다. 어머님도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아셔서 7세부터 수학 수업을 진행하셨고 요즘은 학습지도 병행하고 있다. 나와 경제수업을 하는 것도 경제에 수학도 같이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나 만들기, 그림 그리기보다 수학을 좀 잘했으면" 하는 학부모님의 마음도 있지만 "괜찮아, 어차피 시간 지나면 덧셈, 뺄셈, 구구단 다 알게 되는데 뭐! 수학 말고 잘하는 거 더 잘하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마음도 있다. (그러면서 수학 공부는 매주 빠짐없이 나간다;;)  다음 주 수업도 다다음주 수업에도 선생님이 보기에 정말 정말 잘한 거라며 나는 계속 정연이의 장점을 칭찬했고 이런 장점을 잃지 않고 계속 노력하면서 키워나가라며 격려했다.


아이들의 이상하고 귀여운 소리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발견하고 격려하는 것, 때론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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