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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우시는 거에요?





"왜 우리나라 배는 13척이고 일본 배는 100척이 넘었어요?"


여섯 살 지훈이와 위인동화, 경제동화를 수업한다. 그날은 이순신 책을 같이 읽고 있는데  단순한 질문이지만 꽤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했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하더라도 여섯 살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줘야 한다. 일본의 통일 역사와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며 정치와 경제 이야기도 짚었다. 끊임없는 '왜요?', '왜요?' 물음에 조선 600년은 물론 고려와 일제강점기, 근현대까지 이어졌고 세종대왕 공부에서는 조선 초기냐, 후기냐는 질문에 '너는 아직 여섯 살이잖아?!' 하며 나는 그냥 웃어버렸다. (지훈이는 숫자에 관심이 많다. 어느 시대였는지 꼭 알고 싶어 해서 연도를 잊지 않고 정리한다.)


그 외에도  "마틴 루터 킹은 딱 봐도 흑인이잖아요, 그럼 아프리카 사람인데 왜 미국인이에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노예제도와 다인종 국가인 미국 이야기까지 했어야 했고 "미국이 더 돈이 많고 힘이 센 나라인데 이사도라 덩컨은 왜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미국의 짧은 역사와 유럽의 긴 문화 역사 이야기를 해야 했다. 경제수업도 같이하고 있다. 지난주 나는 여섯 살에게 주주, 증권 및 주식회사와 개인회사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었다. 신기한 건 설명을 해주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 잠깐만요, 그러니까 이게 이거라는 거죠?' 본인이 이해해야 그다음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보통 그 나이 때 아이들은 기본 지식을 다지고자 다양한 방법의 자극과 주입, 반복 수업이 대부분인데 지훈이는 어느 정도 기본이 되어있는 듯 보였다. (....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 시는 걸까?)


 인상 깊었던 수업들은 집에 와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눈다. 똑똑한 아이는 똑똑한 선생님이 가르쳐야 한다며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했다. 영어공부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역사와 경제, 정치까지 다양한 기반 지식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 나는 '지적인 대화를 위한 어쩌고'와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어쩌고' 등 교양이나 인문학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있다.




 지훈이에게 초등학생 형이 있다. 초등 아이에게 더 필요한 수업이라 생각하셨던지 지원이 수업도 부탁해오셨다. 둘째 아이 가르치는 것만큼만 가르쳐달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초등학생의 경제수업은 좀 더 나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부담이 있어 주말을 이용해 대형서점을 찾았고 초등 코너에서 경제 관련 책을 다 뒤져가며 공부했다. 이미 정리해놓은 경제동화 교육과정이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느껴 나는 초등에 맞는 진도표를 다시 짜기도 했다. 어려운 개념이긴 하지만 어떻게 설명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울까 다양한 예시도 생각하고 그와 관련된 활동들도 여러 개 정리해본다. 진도는 중요하지 않으니 책 한 권을 보더라도 다 이해할 때까지 충분히 수업을 해달라는 어머님의 요청, 시간과 진도에 구애받지 않은 수업에 부담은 내려놓으니 즐겁기까지 했다.

 

 늦은 밤까지 수업 준비를 하는데 문득, 아이들이 부러웠다. 6세와 8세, 벌써부터 경제수업이라니.. 남편도 내가 정리한 문서들을 한 장씩 넘겨보며 '오히려 부유한 아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경제수업을 받아야 하는데' 조용히 한마디를 남기기도 했다.

 압구정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한글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한국사,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배운다. 수영, 발레, 축구 등 다양한 신체활동도 빼놓지 않는데 경제수업까지 받는다니. 부모, 혹은 조부모의 경제력, 집안일을 도맡은 이모님과 기사님이 있으니 압구정 엄마들은 아이 교육에만 집중한다. 다양한 교육의 혜택을 받는 압구정 아이들의 선순환과 한 달 벌어 한 달 겨우 먹고사는 전인적 교육은커녕 학교 교육 따라가기 바쁜 악순환의 고리. 서로 다른 고리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 경제수업을 하면서 돈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용돈 기입장, 소득과 소비, 은행의 역할, 세금, 상표, 환율, 광고, 주식과 주주, 인플레이션까지 매주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본 경제 관점에서 내가 더 즐겁고 흥분하던 때도 있었다. 지원이는 어느덧 미국과 중국 환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 커서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서 자기 브랜드를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다며 구상하기까지 이르렀다. 광고는 '기발한 광고' 몇 점을 모방해서 만들었는데 아주 그럴듯했고 나중에 디자인 공부를 하러 유럽, 그중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계획까지 생겼다. 경제수업 몇 달 만에 지원이의 변화들을 보면서 나도 신기했다. 그리고 지원이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바라기도 했다.



출처 : pixabay



 경제수업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디플레이션, 디스인플레이션, 애그플레이션까지 많은 양의 내용을 하루 동안 배워야 했지만 그날은 꼭 알려주고 싶은 게 하나 있었다.  앨프리드 마셜의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 문장이었는데 1인당 몇천 톤을 먹을 수 있는 옥수수가 매년 생산되고 있는데도 한쪽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가 걸리게 되는 애그플레이션*으로 인한 앨프리드 마셜의 말이었다. 그리고 수업 때 참고로 보고 있는 책의 저자의 견해도 같이 읽었다.


 경제학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닙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 이 사회를 구성하는 나의 이웃들, 그리고 지구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인류의 행복을 위한 학문입니다.


 악순환과 선순환의 고리를 운운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어쩌고 했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안 가르칠 수도 없고, 대충 가르칠 수도 없다. 앨프리드 마셜처럼, 책의 저자처럼 필요한 내용과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르치면 되는 거다. 지원이 경제수업이 끝나자 지원이 친구들의 경제수업 문의가 여러 차례 들어왔고 지금도 몇몇 아이들의 경제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차가운 머리는 있는 너희들, 부디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세계와 인류를 바라봐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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