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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빈부격타


 

  

 수업 경력 1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학부모님과 수업 전 인사하는 오리엔테이션은 아직도 긴장이 된다. 평소와 달리 운동화보다 구두, 잠바보다 코트, 백팩보다 숄더백으로 첫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한다. 압구정 수업 3년 차, 어느새 적응이 되어 동 호수만 들어도 어디 위치해 있고 몇 평대 아파트인지 집 구조까지 그려진다. 이미 4명의 아이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익숙한 한강변 아파트. 문 앞에 쓰여 있는 호수를 다시 확인하고 옷매무새를 확인한 뒤 초인종을 누른다. 문이 열리고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학부모님과 인사하고 뒤이어 가사를 도와주시는 분과 아이를 돌봐주시는 시터 분과도 모두 인사를 한 뒤에 식탁에 앉아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앞으로 교육은 이렇게 진행될 거고 서로 지켜야 할 사항들은 이렇고 몇 분 혹은 몇 시간 수업이 있고 교육비는 이렇게 됩니다’의 내용)





 학부모님이 내용을 살펴보고 날짜를 쓰고 사인을 하는 사이 나는 집안을 둘러본다. 같은 구조임에도 오래된 아파트라 대부분 리모델링을 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집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하얀 대리석 바닥과 벽면으로 이루어진 화이트톤의 깔끔한 거실, 고급가구도 군데군데 보이고 아이 놀이기구와 장난감도 눈에 띄게 많다. 키즈카페를 방불케 하는 볼풀장과 트럼펠린이 있는데도 집이 넓어 전혀 좁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빈칸을 다 채웠는지 볼펜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 서류를 들고 확인했다. 생년월일 19XX. 09. 19


- 어? 어머니, 아이 생년월일을 써 주셔야 해요.

- 아, 죄송해요 다시 쓸게요.


 날짜를 보는 순간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는 눈이 동그라지게 놀랐다가 이내 입꼬리를 올리며 조용히 웃었다. 내가 태어난 생년월일이기도 했다.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을 만나는 것 쉽지 않은데 속으로 이것도 참 인연이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짧은 사이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40억을 호가하는 한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강남 아파트, 하얀 대리석 바닥에 곳곳에 눈에 띄는 고급 인테리어. 식탁 위에 올려진 영어신문과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이모님이 부르는 ‘교수님’이라는 호칭. 마주 앉은 우리 두 사람의 모습에 “왕자와 거지” 동화책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건 왜일까.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사는 사람도 있지 신기하다 정도로만 보았는데 오늘 내 감정이 난데없었다. 생각해보니 비슷한 사람끼리 공감대가 형성되고 좋아하게 되는 요인도 있지만 오히려 비슷한 사람이어서 더 의식하고 신경 쓰게 되기도 한다.


 다음 주부터 수업을 하기로 했고 인사를 하고 아파트를 빠져나와 걷는데 나는 걷기를 그만두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신기하다 생각했을 뿐이고 내 처지가 슬프다거나 기분이 안 좋다거나 세상이 불공평하다거나 따위의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맞더라. 위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내 발을 길거리에 묶어두어 오지도 가지고 못한 채 만들었다.


 .......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동안 들은 말들이 전부 다 거짓말인것 같았다. 나는 알고 보니 세상 밖에 있었고,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했다. 꿈을 이루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고 버거운 것이었다. 세상을 탓하기보다 내 노력과 재능을 탓하며 포기하며 순응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크고 단단한 바위라는 세상에 나는 깨기지 쉬운 계란이었구나 깨달았다. 바위를 뚫어보겠다고 마구 던져지며 깨졌던 내 지난 날들. 내 인생 전체가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날 이후, 괜한 불만이 생겼다.


"나도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면 지금의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부모님이 부자였다면 어땠을까?"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우리를 키우셨고, 나도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자랐다. 괜한 불효를 저지른다. 천하의 나쁜 년이구나 싶다가도 나만 그런  아니구나 깨달아진 날이 있었다.


 동네 카페에서 할머니들이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엿듣기보다 커피숍이 작은 규모이기도 하고 할머니들 목소리가 크시니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도 저절로  되었다. 아파트가   있으시고 강남 어디에 건물주 이신 분들,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어떻고, 운전해주시는 기사가 어떻고, 또 건물 청소 아줌마는 어떻고, 건물 관리인은 어떻고, 이건 어제  옷이라며 쇼핑백에서 꺼내 보이시는데 구십 만원, 백만 . 이야기 중간중간  평생 들어보지 못한  백억의 숫자들도 오르내린다. 이어폰을 꽂고 책을 읽고 있었지만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테이블 대화 소리만 들린다. 수다 말미에는 ‘우리 같은 서민들을 말이야,’ 하시며  현재 삶을 만족하기보다  상위 계층과 비교하며 현재의 불만들을 토로하고 계셨다.  (이분들이 서민이라니.. 나는 빈민이었나 보다.)


 빈부격차를 넘어 빈부격타 (빈부격차와 현타의 합성어, 빈부격차에서 오는 현실자각타임, 그날의 나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 경험했다. 내가 TV에서 봐온 연예인이나 그동안 읽은 책의 작가들을 보면 대부분 ‘나는 돈이 없고 가난했다며’ 슬프고 아픈 시절의 가난을 팔아댔다.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이야기하며 독자나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곤 이후 부유해진 삶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거나 짧게 혹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난을 이용하여 이익은  얻어 누리고  이익에 대해서는 대부분 함구한다.

 없는 사람들은 뭐라도 얻어내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 떠들어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말을 아껴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만 생각했지 부자가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던 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웃에 사는 중년 여자분들이 인사를 한다.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으시고 어디 가세요?”

“그 집 어른 분은 건강하시죠?”

“........”

“........”


 A아주머니께서 B아주머니에게 어디를 가냐고 물어보면 일반적인 대답은 ‘00가요.’ 이어야 할 텐데 그에 대한 답은 온데간데없고 B아주머니가 A아주머니께 다시 질문을 한다. 대답이 없는 질문만 오가는 인사. 이후 아무 말이 없는 아주머님 두 분과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한동안 정적 속에 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같은 층에 살고 있고, 우연히 봤으니 인사는 해야겠으니 건넨 말들이지만 이상한 인사법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고 또 지나치게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괜히 한 두 마디 한 것으로 동네 입방아에 오르는 것도 싫은 이유일 거다.


 상위 계층  상위 계층과 비교하여 엘리트 계급과 중산층 계급이 존재하고 요즘은 대한민국 1% 넘어 0.1%, 0.01%등으로 계급을 나누기 바쁘다. 하위계층은 하위계층 끼리도 나누어  세분화해 구분 짓는다. 가까운 친구가 어릴 때 영세민 아파트에서 자랐다고 했다. 초등학교가 하나만 있어 일반 아파트 아이들과 영세민 아파트 아이들이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결국 일반 아파트 민원으로 새로운 초등학교를 지어졌고 기존 초등학교는 영세민 아이들만 다니는 초등학교, 새로 지은 초등학교는 일반 아파트 아이들이 초등학교가 되었다고 했다. 일반 아파트라고 해서 엄청 비싼 초호화 아파트가 아니다. 친구가 자란 동네는 서울 외곽으로 다들 어렵게 사는 동네라고 했다.

 

아파트로 계층을 나누고

자동차로 계층을 나누고

남편의 직업으로 계층을 나누고

자식들의 성적으로 계층을 나눈다.


압구정에서도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선생님, 00동 들어가세요? 아파트 넓어요? 다른 애들은 학원 어디 다녀요?어머, 미국이나 영국으로도 유학이나 이민을 가요?” 하며 바로 옆 아파트인데도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신기해한다.


..... 빈부격차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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