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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간식의 신세계

때론, 비확행


 예진이네 집에서 매주 주시는 음료가 있다, 서리태 콩과 결명자로 만든 차 음료인데 500ml 페트병에 들어있어 수업시간이나 이후에 이동하면서 즐겨마셨다. 처음엔 씁쓸한데 뒷맛이 달콤해 아주 인상적인 음료였다. 주말에 편의점을 들려서 같은 게 있으면 사려고 한 벽면을 차지한 음료를 다 뒤져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000 수염차를 사고 나왔다.

수업 중 나온 간식이 맛있어도 학부모께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간식을 챙길 때 괜히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잘 먹었습니다’ 정도로 인사를 하는데 그 음료는 체면 불고하고라도 알아내야겠다 싶어 물어보았다. 매주 궁금했지만 갑자기 생각난 듯 여쭈었다.


“아! 어머니. 이 음료요, 어디서 사셨어요? 주말에 편의점 가서 사려니 없더라고요 (웃음)”

“아... 네 선생님, 이거 여기 옆에 백화점에서 샀어요.”


백화점이라고 말을 하는데 어머님도 약간 머뭇거리셨고 듣는 나도 1-2초 정도 멈칫하고 뒷말을 이었다.


“..... 아 네네, 어쩐지 편의점에서 계속 못 찾았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웃음)”


‘여기 옆에’ 백화점은 2개가 있는데 그중에도 본점으로 하고 있는 백화점인 듯했다. 출처가 어디인지 알아냈으나 음료를 사러 가지는 못했다. 출근하느라 늘 시간이 빠듯하고 퇴근하면 집으로 바로 가고 싶은 마음에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다. 중간에 수업이 비는 시간이 있을 때 한 두 번 구경을 하러 갔는데 백화점 특유의 고급, 서비스 문화가 나에게는 편안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서둘러 나온 기억이 있다.



출처 :  pixabay


 진희는 큰 눈에 긴 생머리, 눈웃음과 넘치는 애교까지 겸비했다. 예쁘게 생기기도 했지만 나와하는 수업을 매우 좋아해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를 넘어 서로 보고 싶어 하는 사이가 되었다. 여섯 살 진희가 직접 간식을 준비했다면서 차려 나왔다. 뚱뚱한 마카롱 두 개와 진한 코코아 두 잔. 뒤이어 설명이 따른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간식 준비했어요. 가로수길 갔다가 선생님 생각나서 사자고 했어요.

“진희가 백화점에서 코코아 먹는데도 선생님이랑 나눠먹어야 한다면서 하나 더 사 왔어요.”


이어서 어머니의 간식 준비 후기도 따른다. 정리해보면 가로수길 맛집 마카롱이었고 백화점 고디* 코코아였던 거였다. 감사하다고 마셨지만 ‘얼마나 더 수업을 잘해야 하는 걸까’ 하며 처음에는 속으로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고오급 간식이 일상인 걸 알고는 요즘은 감사하게 먹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진희네 집은 슈퍼나 마트에서 보이는 그 흔한 새우0, 고깔0, 빼빼0 과자들이 없다. 종종 자신이 먹는 과자를 한 두 개 건넸는데 백화점에서 사 온 쿠키와 빵들이다.


 평생 먹어왔던 과일인데 압구정에서 먹는 과일은 다른 맛이 난다. 당도도 뛰어날뿐더러 모든 과일이 신선하고 단단하다. 내가 그동안 먹었던 과일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잠시 생각이 들 정도다. 남편 생각에 몇 개 사 가지고 가야지 하며 아파트 상점이나 백화점 신선식품을 둘러보았다. 적힌 가격표를 보고  생각보다 비싸 조용히 내려놓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초코파이 하나에 천 몇백 원, 베리류 음료가 한 병에 만원 가까이, 대만 과자와 일본 빵 등. 해외여행을 갈 필요가 없이 압구정에서 나는 세계 각지의 간식들을 맛보기도 한다. 커피 외에 군것질을 잘하지 않는데 '세상에 정말 맛있는 게 많구나' 하며 그야말로 나는 간식의 신세계에 들어섰다.




 오랫동안 압구정을 다니다 보니 아파트 주변에서 먹게 되는 간식이 겹치고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저녁시간 이었고 백화점 지하 식품코너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김밥 1팩에 9000원, 만두 1팩에 7000원, 빵 하나에 10000원. 간단한 간식인데도 값이 꽤 나간다. 그래도 이왕 온 거 끼니를 해결하고 가기로 한다. 일반 김밥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다시마 김밥을 선택했다. 새로운 맛, 신선하고 좋은 재료, 간도 딱 맞고 식감도 좋다. 한 접시를 다 먹고 나서 더부룩하지 않은 포만감도 기분 좋게 한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 중에 수업을 다니며 김밥을 매일 먹어서 쳐다도 보기 싫다는 분이 계신다. 내가 먹은 김밥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것 같다.

 

 '소확행'이라는 신조어가 한동안 유행이었다. 일상의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 압구정을 보면서 나는 새로운 신조어가 떠올랐다. '비확행' 비싸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 새롭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정말 행복하긴 하다. 가성비를 따지느라 자주 실패했던 커피집, 맛집들. 그래서 새로운 곳을 가기보다 자주 갔던 단골집을 안전하게 고른다. 친구들과 기분전환으로 새로운 곳을 가야 한다면 비싼 값을 주더라도 백화점이나 호텔의 '비확행'을 과감히 선택한다. 맛도 있지만 앉아서 숨만 쉬어도 좋은, 공간이 주는 편안한 에너지가 있다. 직원들도 친절해서 기분까지 좋아진다.


가끔 백화점과 가로수길에 들러 맛있다는 간식을 사서 집으로 간다. 압구정에서 아주 못된 것만 배워왔다며 남편은 한숨을 늘여놓는다. 그러면서     베어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 건너온 물건’이라 다르다며 맛있다’는 말도 결국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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