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압구정 캐슬



 일곱 살 남아의 수업이다.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목소리가 이만큼이나 커져 수업이 하기 싫은 눈치다. 책상에 겨우 앉혔고 아이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 축 늘어진 자세로 한마디 한다.

“선생님 오늘 공부는 조금만 해주세요. 제가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골프도 치고 승마도 하고 백화점도 다녀왔어요. 그러니까 오늘 수업은 조금만 해주세요. 네?!” 골프, 승마, 백화점? 일곱 살 아이에게서 나오는 단어들이 맞나,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었다.


“우현아 오늘 뭐뭐 했다고?”

“아이참! 골프도 치고 승마도 하고 백화점도 다녀왔다고요!”


  우현이는 진심이었다. 짜증이 많이 나 있었고 조금만 더 있다간 펑펑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준비한 수업의 주요 내용만 전달하고 우현이가 좋아하는 포켓몬스터 캐릭터 두 개를 그려주었고 색칠하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출처 : pixabay

 


 우현이는 수학뿐 아니라 과학, 역사, 쓰기 등 일주일에 2-3번씩 방문하여 자주 만나 공부한다. 집에서 할머니와 이모님과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학교와 학원, 과외 등으로 꽉 찬 일정을 보낸다. 나도 수업을 잘 전달하려 노력하지만 우현이의 성향에 맞춰 다양한 재미요소로 수업을 진행한다. 오래 봐온 터라 자주 안아주고 따뜻한 말도 잊지 않는다. 우현이의 아버님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시고 어머님도 개인 사업을 하시며 두 분 다 많이 바쁘시다.

 

어느 날은 우현이 어머님이 나를 따로 불러 제안을 해오셨다. 우현이의 숙제도 봐주고 수업태도나 습관도 잡아주며 가정교사로 지내면 어떠냐고. 내 월급도 물어보시며 그 이상도 줄 수 있다 제안해 오셨다. 이 집 저 집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한 아이만 가르치면 되는 장점이 있어 솔깃하긴 하지만 아이에 대한 습관 성적 등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다. 일정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니 어쩌면 자유롭지도 않다. 또 우현이 외에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 많고 앞으로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다. 더 자주 와서 잘 가르치겠다고 말씀드리고 이틀 뒤에 거절했다.



 

여덟 살 남아의 수업. 압구정 여덟 살의 수학 수업은 강도가 높다. 1학년이지만 초등 저학년 내용은 이미 일곱 살에 끝낸 상태이고 초등 고학년 수업의 내용으로 다양한 도형의 넓이 구하기 공식을 익힌다. 길이, 원, 넓이 등 다양한 수식에도 능해야 한다. 원이는 여덟 살 중에서도 기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문제도 잘 풀어 가르치기 편한 학생이었다. 한 시간 수업으로 진행하는데 만들기를 좋아해서 그중 몇 분 정도는 만들기로 진행한다.


“오늘은 뭐 만들어 볼까? 자동차 어때?”

“자동차 좋아요. 마세라* 어때요?

“마세라*? 그게 뭐야?

“왜 자동차 있잖아요. 삼지창 있는 거”

"..............."


 아이들과 자동차를 만들 때 보통은 트럭, 버스, 승용차 등의 종류로 제안을 하지 브랜드를 듣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바로 검색했고 모르는 걸 다 들켜버렸지만 막 생각난 듯 상황을 모면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서 슈퍼카 종류가 뭐가 있는지 검색했고 이름과 특징들을 익혔다. 벤*, BM*만 알고 있던 나는 새로운 자동차 세계에 들어섰다.





 직장을 다니는 학부모님이 있어서 종종 수업사진과 내용을 문자로 정리해서 보낸다. 그러다 보니 내 핸드폰에는 아이들 사진도 몇 장 보관되어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압구정에 대한 이야기, 그 와중에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친구는 내 이야기는 뒷전이고 핸드폰 사진을 확대했다 줄였다 하며 한마디 한다.


“여섯 살이 버버* 티셔츠를 입네?!"


내가 보기에는 그냥 하얀 티셔츠인데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명품 티셔츠였다. 그날 이후로 나도 보이더라, 아이들이 입고 있는 브랜드 옷과 여기저기 걸려있는 다양한 명품 의류들.






 마음에 드는 선생님은 가정교사로 제안을 하고 아이의 일정에 골프, 승마, 백화점이 있다. 자동차 만들기에서 트럭, 승용차, 버스의 종류가 마세라*, 벤틀*, 롤스로이* 의 브랜드로 이야기한다. 나도 아직 한 번도 안 입어본 명품 티셔츠를 입고 초콜릿이나 과일을 먹은 손으로 옷에 슥슥 닦는다. 영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아이들은 수업 중에도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단어나 문장으로 자주 말한다. 중국어를 하는 아이도 있다.


어제 외제차 공부도 했는데, 영어와 중국어도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전 02화 이상한 나라의 압구정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압구정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