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집에서도 부모님이 영어로 대화하는 아이들이 많다. 미취학 아이들은 영어 단어나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일상이고 초등학생 아이들은 영어로 답을 쓰거나 영어로 노트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한글 읽기와 쓰기 수업은 방문수업으로 충당한다. 주 1회 수업이 기본이지만 2,3회 한글 수업을 선호하는 터라 압구정에 와서 나는 더 바빠졌다.
여섯 살 윤재, 회화부터 읽고 쓰기까지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좋아한다. 영어유치원은 물론, 원어민 선생님 영어과외도 받는다. 여섯 살이 되었으니 한글 공부가 다급했고 교구 수업 중이었는데 한글 수업도 추가로 시작했다. 어벤저스를 좋아하는 윤재는 영웅 의상을 입고 역할놀이하는 걸 좋아하고 레고 만들기를 좋아하는 영락없는 남자아이다. 놀이시간에는 귀가 따갑도록 목소리도 크고 아는 내용이 많아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끝이 없다. 어벤저스 영웅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나는 윤재를 통해서 알았다.
한글 시간만 되면 마치 다른 아이와 공부하고 있는 듯 이전의 의욕은 어디로 갔는지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유창한 영어에 비해 읽기도 정말 안되고 자꾸 삐뚤어지는 글자를 써 내려가는 걸 지켜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인데 그럼에도 잘 쓰려고 애쓰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서 마음이 자꾸만 가는 아이였다. 본인도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영어로 혼잣말을 한다. 얼핏 들어보니 애니메이션 내용 중 몇 마디를 내뱉는 거 같았다. 나도 몇 마디 따라 해 본다.
아이들이영어로하는말을알아듣기는하지만영어로물어보는데한국말로대답하는것이그간좀어색했다. 그래서영어에는영어, 한국말에는한국말로수업을하는중이다. 어느날은정연이가신기했던지 "선생님, 영어선생님도아닌데왜영어로말을해요? 선생님도 영어 배웠어요?" 라고묻는다. 정연이처럼신기해하는아이들도있지만윤재처럼이상하다며내발음을언급하는아이들이아직도몇있었다. 이아이들은실제로정말영어발음이유창하다. 좋은 발음을 위해서자주말하는게중요하니집에서도영어말하기를해본다. 익숙지않은남편, 가까이오라며내귀에조용히한마디를남긴다.
".......... 셔럽"
".........뭐?!!"
"못 알아들었어? 영국 발음으로 해야겠다. 셔텁! 에스. 에이치. 유. 티. 유. 피"
윤재의 '영어 발음 이상해요' 만큼이나 충격이고 웃겨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도 매일 영어 공부하는 모습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까지 하는 남편이다. (남자 친구가 어느덧 남편이 되었다.) 윤재는 아직도 내 영어 발음이 이상하다고 하고, 남편도 '셔럽'이라며 도와주지 않지만 굴하지 않고 마이웨이 영어공부는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