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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Nov 01. 2020

선생님 영어발음 이상해요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집에서도 부모님이 영어로 대화하는 아이들이 많다. 미취학 아이들은 영어 단어나 문장으로 말하는 것이 일상이고 초등학생 아이들은 영어로 답을 쓰거나 영어로 노트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한글 읽기와 쓰기 수업은 방문수업으로 충당한다. 주 1회 수업이 기본이지만  2,3회 한글 수업을 선호하는 터라 압구정에 와서 나는 더 바빠졌다.


 여섯 살 윤재, 회화부터 읽고 쓰기까지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좋아한다. 영어유치원은 물론, 원어민 선생님 영어과외도 받는다. 여섯 살이 되었으니 한글 공부가 다급했고 교구 수업 중이었는데 한글 수업도 추가로 시작했다. 어벤저스를 좋아하는 윤재는 영웅 의상을 입고 역할놀이하는 걸 좋아하고 레고 만들기를 좋아하는 영락없는 남자아이다. 놀이시간에는 귀가 따갑도록 목소리도 크고 아는 내용이 많아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끝이 없다. 어벤저스 영웅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나는 윤재를 통해서 알았다.

 한글 시간만 되면 마치 다른 아이와 공부하고 있는 듯 이전의 의욕은 어디로 갔는지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다. 유창한 영어에 비해 읽기도 정말 안되고 자꾸 삐뚤어지는 글자를 써 내려가는 걸 지켜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인데 그럼에도 잘 쓰려고 애쓰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서 마음이 자꾸만 가는 아이였다. 본인도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영어로 혼잣말을 한다. 얼핏 들어보니 애니메이션 내용 중 몇 마디를 내뱉는 거 같았다. 나도 몇 마디 따라 해 본다.

 

"선생님 영어 발음 이상해요"

"............"


 윤재는 진심이었고 진지했다. 갑자기 들어온 공격에 나는 배가 아프도록 웃었고 살짝 윤재를 노려보았지만 굴하지 않고 단어와 문장들을  오버해서 따라 했다. 윤재는 발음이 이상하다며 자꾸만 지적을 했지만 '왜왜? 뭐가 이상해? 정말 똑같은데?'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지적을 당했다면 뭔가 기분도 나쁘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민망했을 테고 영어로 뭔가를 뱉어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아이들 수업이라 나는 자유롭고 당당했다.



출처:pixabay



......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배가 아프도록 웃었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았나 보다.  *튜브를 검색해 ABC부터 기본 단어나 문장을 듣고 말하기가 주된 공부! 글쓰기에 비유하자면 필사, 춤에 비유하자면 똑바로 서있기, 바르게 걷기처럼 기본부터 시작하는 영어공부인 셈이다. 아이들 눈높이 맞춰 어린이 영어 동요, 어린이 영어 동화도 구독하며 자주 듣고 말한다. 요즘은  외에 다양한 영어 콘텐츠들을 구독하며 개인 영어공부까지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이 영어로 하는 말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영어로 물어보는데 한국말로 대답하는 것이 그간  어색했다. 그래서 영어에는 영어, 한국말에는 한국말로 수업을 하는 중이다. 어느 날은 정연이가 신기했던지 "선생님, 영어 선생님도 아닌데  영어로 말을 해요? 선생님도 영어 배웠어요?" 라고 묻는다.  정연이처럼 신기해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윤재처럼 이상하다며  발음을 언급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실제로 정말 영어 발음이 유창하다. 좋은 발음을 위해서 자주 말하는  중요하니 집에서도 영어 말하기를 해본다. 익숙지 않은 남편, 가까이 오라며  귀에 조용히 한마디를 남긴다.


".......... 셔럽"

".........뭐?!!"

"못 알아들었어? 영국 발음으로 해야겠다. 셔텁! 에스. 에이치. 유. 티. 유. 피"


윤재의 '영어 발음 이상해요' 만큼이나 충격이고 웃겨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말은 그렇게 해도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도 매일 영어 공부하는 모습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고 까지 하는 남편이다. (남자 친구가 어느덧 남편이 되었다.) 윤재는 아직도 내 영어 발음이 이상하다고 하고, 남편도 '셔럽'이라며 도와주지 않지만 굴하지 않고 마이웨이 영어공부는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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