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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화동오로라 Aug 17. 2024

이해하려 할수록



 미희는 조카들을 보러 한 달에 한두 번 선희네를 찾는다. 어렵게 만난 조카들이라 각별하기도 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미희 성향이 조카들과 잘 맞았다. 미희 이모 오려면 몇 밤 남았냐고 물어보며 매일 기다리는 조카와 주말 늦잠을 뿌리치고 아침부터 서둘러 수원으로 미희. 

 미희는 조카들을 보자마자 그사이 또 자랐다며 키재기를 하며 놀고 한 명씩 안아보며 얼마나 무거워졌는지도 확인한다. 이발해서 짧아진 하준이 머리와 파마머리 하은이를 보며 미희는 하얗고 동글동글한 조카들에게서 한동안 눈을 떼질 못한다. 


 점심을 먹고 문방구에서 그간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하나씩 사준 다음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 타기, 미끄럼틀 타기를 하고 얼음땡이나 술래잡기 놀이를 하며 한 여름의 더위도 잊을 만큼 놀았다. 미희의 체력은 점점 방전이 되어가는데 멈출 줄 모르는 아이들의 체력에 쉬었다가 또 놀자며 선희가 가까운 카페를 찾았다. 아쉬워하던 조카들도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늘어져 있던 어깨가 올라왔고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아이들은 초코 음료를 주문했고 선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미희는 아이스 라테를 주문했다. 역시 여름은 카페에서 에이컨 바람맞으며 커피 마시는 게 최고의 피서라며 미희도 선희도 행복해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미희의 말에 선희는 '매일 똑같지 뭐' 하곤 삶의 어려움들을 꺼내놓았다. 애들이 금방 크니까 작년에 옷이나 신발이 안 맞아 매년 옷을 사야 하고 내년이면 하준이가 학교에 들어가니까 학습지를 하고 있고 초등 전집도 구매했는데 한 번에 결제하기에는 큰 금액이어서 할부결제를 했는데 매달 카드 값이 부담이다, 등의 이야기. 덧붙여 요즘은 허리랑 골반이 아파서 매일 침 맞으러 한의원을 다니고 있다고도 했다. 미희는 선희에게 살을 빼면 허리랑 골반에도 무리가 덜 가고 웬만한 질병은 많이 호전되니 다이어트를 하는 게 어떻냐고 말을 할까 하다가 ‘운동하고 살 빼야지’ 매번 다짐하는 선희를 알기에 조용히 들어주기만 했다.


 선희가 아이들 낮잠시간이어서 재워야 한다며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데 최신 핸드폰이 미희 눈에 들어왔다. 준석을 통해 선희의 최신형 핸드폰에 대해서 듣지 않았더라면 핸드폰을 보자마자 미희는 “언니, 핸드폰 바꿨어?” 하며 한숨 섞인 말이 튀어나왔을 거다. 미희는 모르는 척 빨대로 아이스 카페 라테를 휘휘 저으며 한 두 모금을 마셨고 하준과 하은에게 고개를 돌려 활짝 웃으며 오늘 이모랑 뭐 하면서 놀았던 것이 제일 재미있었냐며 물었고 작은 입으로 종알대는 조카들의 말을 들었다.

 곧이어 형부가 카페로 들어섰다. 하준과 하은은 이모랑 더 놀고 싶다며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미희이모가 집으로 갈 거라고, 가서 물감놀이도 하고 그림 그리기도 하고 깜깜해지면 집으로 갈 거라고 하니 그제야 안심하고 초코 음료를 하나씩을 들고 카페를 나섰다.


 아이들의 종알거림과 다양한 요구가 없으니 카페가 한결 조용해졌다. 이야기 중에 지잉~ 하고 선희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선희는 왼쪽 팔목을 들춰보며 동그랗고 번쩍이는 시계를 터치하더니 메시지를 확인했다. 미희는 선희 손목에 있는 스마트 워치를 보고는 결국 참았던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언니! 핸드폰 바꾼 거 같더니 워치도 샀어?!!”


 선희는 당황한 기색이 있었지만 어.. 이거 하며 장황하게 말을 이어갔다. 2년 약정에 한 달에 얼마를 내면 되는 거에 워치를 추가하면 더 할인이 되었고 단골집이 있어서 잘해주었다는 등의 묻지도 않은 말을 이어갔다. 미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목조목 따져 말했다.

 “약정? 그럼 한 달에 못해도 10만 원은 핸드폰비로 나가겠네, 형부도 같이 바꿨다며?! 그럼 둘이 20만 원, 일 년이면 240만 원이야 언니. 2년이면 480만 원이고. 애들 키우는데 돈 나간다며? 한 달 카드 값이 부담이라며? 그래서 나한테도 돈 빌려가고 또 영희한테도 빌려가잖아. 우리가 핸드폰이랑 워치 바꾸라고 빌려준 돈 아니야 언니!”
 선희는 커피를 저었던 빨대를 그대로 잡은 채 깜짝 놀라며 미희가 퍼부어대는 말들을 들으며 미희 눈을 쳐다보며 그대로 듣고 있었다.
  “진희언니한테 빌린 오천만 원도 안 갚았다며?! 이런 거 살 돈 있으면 나는 돈부터 갚겠다. 최소한이라도 500만 원은 갚아야 하는 거 아니야?! 십 원 한 푼도 안 갚았다며?!.... 둘 중에 하나만 해! 돈이 없으면 쓰질 말던가, 돈이 쓰고 싶으면 없다 없다 소리하지 말고 입 다물고 책임을 지고 살던가!!”

 미희는 선희의 네일아트 손톱과 눈썹과 아이라인 문신, 목걸이 반지 팔찌의 장신구들도 눈에 들어온다.

 "진희언니는 그렇게 돈을 벌어도 남들 있는 명품가방이 하나 없어, 형부 말이 10원 한 장도 허투루 안 쓴대! 진희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선희는 결국 두 눈이 빨개져서는 슬픔인지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눈물이 나왔고 옷소매로 눈 주변을 계속 닦았다. 선희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안 낳아 본 네가 뭘 아느냐고 오히려 주변에 이모와 삼촌들은 어린이날 이렇다더라 생일은 저렇다더라 하며 가족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미희는 더 어이가 없어 또 따져 물었다. 다른 이모들도 전세금에 보태 쓰라며 오천만 원씩 빌려주느냐고. 선희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카페에 미희 혼자 남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미희도 당황스러웠다. 주말에 어렵게 시간을 내서 버스를 세 번이나 타고 왔고 조카들과 놀아주며 언니의 육아를 돕고 힘이 되고 싶어 온 것인데 다 망쳐버렸다. 언니 네를 휘저어 놨다. 두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참을 걸’, ‘차라리 오지 말걸’의 후회와 자책도 했다. 그런데 미희는 선희의 삶을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화가 나고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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