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김 Jan 04. 2020

실종

03.01.2020 @섬

저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의 1월, 손이 귀한 집의 4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제 위로 누나만 5명이 있어요. 의학기술이 발달해서 태어나기 전부터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있는 요즘보다 전의 시대였죠.

다행히도 저희 할머니가 딸만 낳는다고 구박하는 유형의 시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섯이 내리 딸인 건 좀 심하잖아요. 죄송한 마음에 항상 눈치만 봤던 어머니는 저를 낳고서야 드디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불과 하루 만인 그다음 날 모든 것이 바뀌었지만요.

드디어 태어난 4대 독자인 저를 위해 뛸 듯이 기뻐하던 할머니는 동네에 용하다는 점집 겸 작명소에 직접 찾아가셨대요. 최고의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셨겠죠. 하지만 그곳에서 돌아온 할머니의 표정은 거의 사색으로 매우 어두웠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 연유를 물었을 때도 한참 동안 대답을 못하시고 끙끙 앓으시다가 겨우 내뱉으셨대요. 야가 살다가 실종 사주가 있다고 한다고,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실종될 사주라고. 이런 사주는 평생 처음 본다며 살면서 매사 조심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단단히 이르더니, 그 무속인이 심지어 할머니 나가실 때 소금을 한 사발 뿌리더랍니다. 그냥 가서 얌전히 이름만 짓고 올걸, 사주를 내가 왜 봐 가지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하시다가 딸만 다섯씩 낳을 때에도 한마디 안 하셨던 분이 급기야는 어머니에게 "도대체 우리한테 왜 이러냐"고 하셨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지만 시어머니의 마음이 너무나도 이해가 돼서 아무 말도 못 하셨대요.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결심하신 거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을 지키겠다고, 절대 실종되는 그런 일 따위 없도록 하겠노라고.

그리하여 태어나면서부터 저는 늘 감시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혼자서 어딘가를 가거나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항상 누나들과 함께 가야 했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누나들이든, 어머니든 누군가가 항상 저를 지켜보고 있었고, 저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밖에 나갈 수조차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갇혀 있어야 했죠. 방에 있을 때조차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게 계속되었으면 익숙해지지 않았냐고요? 글쎄요, 익숙한 것과 편안한 것은 다른 거잖아요?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도 필요하다고요. 물론 이유야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실종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저는 늘 갑갑했고, 사실 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무속인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그게 다 맞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그 무속인이 저희 집안의 거의 모든 대소사와 운들을 다 맞췄고, 누나들의 이름도 다 지어줬다지만, 틀릴 확률도 분명히 존재하는 거잖아요, 그 사람이 신도 아닌데.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요. 그날은 셋째 누나가 나를 보고 있었고, 동네 형들과 언덕 위 계단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슬아슬하던 구슬이 계단 아래로 떨어져 굴러가서 다른 골목길로 튀길래 친구들과 같이 저도 모르게 뛰어내려 갔죠. 내리막길이라 걷잡을 수 없이 구슬이 빠르게 굴러가는 걸 놓치지 않으려고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항상 누군가와 함께 다녔기 때문에 그때까지도 길을 알지 못했었어요. 딱히 외울 필요가 없었죠, 손잡고 따라가면 되니까. 주변을 둘러보는데 같이 뛰던 친구들이 없는 겁니다. 그러자 난생처음으로 혼자 있어보게 된 상황에 묘한 흥분감마저 들더군요. 그래도 누나가 걱정할 것 같아서 내려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길들은 모두 비슷해 보였고, 저는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렸죠.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아무도 없는 다른 놀이터를 발견했어요. 놀이터에서 기다리다 보면 누나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타다가 미끄럼틀 안에 들어가 혼자 놀다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깨어보니 벌써 저녁 무렵쯤이더라고요. 어둑어둑해진 하늘 아래 우두커니 앉아있으려니 어디선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냉큼 큰 소리로 대답했더니 멀리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된 어머니였어요.

곧이어 따라온 셋째 누나 역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론 혼자만의 시간을 더 이상 갖지 못한다는 게 조금 아쉬웠어요. 그날 밤 셋째 누나는 어머니에게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게 맞았습니다, 누나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내가 없어진 것이니 제 잘못이었지만, 나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니 누나 잘못이라고요. 얼마나 세게 때리셨는지 그날 맞은 자욱이 아직도 종아리에서 지워지지 않았을 정도였다고요.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귀찮아하던 누나들은 셋째 누나의 피멍이 든 다리를 보고 온몸을 떨었고, 그다음부터는 서로 눈치를 보며 저를 감시하는 일을 미루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해오던 것처럼 계속해서 평일엔 매일 한 명씩 돌아가면서 저를 봐야 했죠. 주말은 번갈아가면서 보고요.

그 이후로 감시는 더더욱 심해졌습니다. 4대 독자라 애지중지했다기보다, 저를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데에 집중했어요. 아주 평범한 아이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하셨는데, 최대한 눈에 튀지 않게 입히고, 저에게도 늘 조용히 얌전하게 행동하라고 주의를 주시곤 했죠. 혹시라도 동네에 실종될 사주라는 것이 알려질까 어머니는 늘 전전긍긍하며 절대 밖에 얘기하지 말라고, 조심하라고 일렀습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친구들도 생겼지만, 학교에서 있는 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집에 초대를 해도 항상 누나가 따라가야 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곧 누나보이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마마보이에 누나를 붙인 거죠. 남자애들은 특히 끼리끼리 모여 놀거나 하는 일이 잦았고, 저는 더 이상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했는데, 막상 애들이 놀리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어져서 오히려 안 어울리는 것이 속 편한 때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 때문인지, 중학교 때는 사춘기가 심하게 왔어요. 중2병이라고도 하죠, 제 안의 세계에 빠져서 스스로를 비관하면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고 있나, 이럴 거면 왜 사나 싶었다니까요.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차라리 그냥 실종되거나 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반항도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가 많이 우셨죠.. 아버지께 많이 맞기도 했고요.

마치 실종되기를 기다리는 것 같은 삶은 그야말로 따분하면서도 불안하고, 또 두려웠습니다. 도무지 뭔가를 열정적으로 할 생각이 들지를 않았어요. 어차피 실종될 운명인데, 내가 열심히 뭘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루하루를 멍하니 생각 없이 흘려보냈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은 다섯째인 막내 누나가 저를 보는 날이었어요. 한창 고등학생이었던 막내 누나는 누나들 중에 가장 예쁘게 생겨서는, 인기가 많아 옆 남학교에서 누나를 찾아올 정도였어요. 그런 누나가 절 감시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나에게 있어서 정말 싫은 일이었겠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게다가 그 당시 누나는 서로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었어요. 근데 계속 저를 따라다녀야 하니까 얼마나 싫었겠어요. 저는 누나에게 여기 가만히 앉아있을 테니 그 남학생을 만나고 오라고, 보고 싶지 않냐고 꼬드겼죠. 제가 이제 애도 아니고, 길을 못 찾거나 집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요. 고민하던 누나는 그럼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곧 돌아오겠다고 하고는 시야에서 멀어졌습니다. 혼자 있어본 것은 거의 10년 만이었어요.

저는 충동적으로 근처 마을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그리고는 터미널에 세워진 버스 중에 아무거나 골라 탔어요.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저는 맨 뒷좌석 구석에 조용히 숨죽이면서 앉아있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버스 기사분이 승객이 몇 명이 탔는지 확인도 안 하더라고요. 저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죠. 하지만 몇 시간 뒤 이 환호성이 비명으로 바뀔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버스에 타고 있던 저는 혹시나 들킬까 숨어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깼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버스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어요. 벌떡 일어나 좌석의 안전벨트를 잡는 순간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니 마치 슬로모션처럼 버스 차창의 풍경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죠. 죽기 살기로 좌석에 몸을 눕혀 안전벨트로 스스로를 고정시켰습니다. 몇 번 굴러 떨어지던 버스 안에서 최대한 버티다가 거꾸로 뒤집힌 버스에서 깨진 창문 틈으로 후다닥 빠져나왔습니다. 주변을 살펴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제가 빠져나오자마자 굉음이 울리더니 뭔가 폭발했고, 불이 붙은 버스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목적지라도 보고 탈걸, 아무것도 모르고 숨어 탔으니 이 곳이 어딘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사방은 방금 폭발한 버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온통 고요한 숲이었고, 폭발 소리에 놀랐는지 동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정신이 없던 저는 망망한 어둠 속에서 그저 앞으로 달렸고, 그렇게 계속 달리다가 어느 순간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져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너무 추웠고,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팠습니다. 희미하게 뜬 눈 사이로 천장이 보이자 왠지 모를 안도감에 기운이 빠졌습니다. 제가 눈을 뜨자 누군가가 눈을 떴어요! 간호사 불러! 하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고, 동시에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익숙한 소리들이 가족들이 내 옆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울고 계셨고 아버지가 제 손을 잡고 계셨어요. 막내 누나는 제 옆에 누워있었죠. 저를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에 너무 울어서 탈수 상태가 왔다고 하더군요.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저는 가족들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버스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였고, 함께 탔던 모든 승객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병원에 누워 TV로 지켜봤어요. 아무도 내가 이 버스를 탔는지 몰랐기 때문에 신고가 되지 않았다가, 사고로 인해 주변 수색을 하던 수색대에 의해 구조되면서 동시에 가족들의 신고와 연결되어 발견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마을에서 꽤 큰 뉴스였고, 게다가 저 혼자 살아남은 것이 이슈가 되어 저는 마치 불행을 불러온 사람 취급을 받았어요. 저 때문도 아닌데 말이죠. 한동안 막내 누나는 다른 누나들 대신 오직 저를 보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이 일이 누나의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것이 미안했어요.


그 일이 있은 후로 저희 가족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부모님도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그야말로 순조롭고 평범하게 살았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스스로도 힘들었는지, 결국 인생의 순리 /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에 굴복했다고 해야 하나요. 그냥 편안하게 안정적으로 살고 싶더라고요. 물론 고등학교 때까지도 감시는 계속되었습니다. 첫째 누나와 둘째 누나가 결혼해서 출가한 이후론 셋째 누나와 넷째, 막내 누나가 번갈아가며 등교할 때와 방과 후에 학교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집에 데려가기를 반복했죠. 고등학생이니까 대학교 입시 준비를 하느라 다행히도 별일이랄 것이 딱히 일어나지 않았어요. 이사 온 동네의 친구들은 제 일도 몰랐고, 또 똑같이 입시 준비로 바빠서 서로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죠. 친구들도 학교 끝나면 또 공부하고, 학원 가기 바빴고, 아, 저는 물론 대부분 과외로 집에서 했지만요. 중학교 때의 사건 이후로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저는 책을 많이 읽고, 공부에 푹 빠졌습니다. 주로 집에서 책을 보며 보내는 시간이 늘었죠. 그렇게 집돌이가 되어 고3까지 순탄하게 입시를 하고, 수능을 보고. 덕분에 성적도 잘 나와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도 했네요. 부모님은 드디어 애가 정신 차렸다고 너무 좋아하셨고, 누나들도 덩달아 축하해줬죠.


무속인이 말했던 실종 예정 시기가 스무 살 이전이었기 때문에 저는 열아홉이 얼른 지나가고 빨리 스무 살이 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대학생이 되서까지 누나들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하면... 어우, 정말 최악이죠.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마침내 스무 살이 되어 그 운명의 장난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비로소 안전해지면 그 무속인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죠.

열아홉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불과 2주 전인데요, 그날은 하루 종일 집에 있었거든요. 어머니가 너무 불안해 하셔서요. 그래서 그날은 한시도 어머니의 눈앞에서 떨어지지 않았죠. 그리고 마침내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오랫동안 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 막혀있는 숨이 드디어 트이는 기분? 새해도 새해지만, 정말 새로이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이제는 진짜 뭔가를 좀 마음껏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혼자 여행도 하고, 감시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자유시간도 즐기고. 무엇보다 집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눈에 안 띄는 곳으로요.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시도를 안 했다 보니 뭐부터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막막하더군요.

.

.

.

(아래에 두 가지 결말이 있습니다. 1번과 2번 중 마음속으로 하나를 선택하신 후 아래로 스크롤을 내려서 읽어보시고, 마음에 드는 결말을 아래에 댓글로 달아주세요.)
















결말 1.

만약 오늘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이 저에게 그 무속인을 찾아가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자는, 이런 흥미로운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해오던 것처럼 그렇게 고루하고 지겨운 인생을 이어나갔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의 낙이 없었죠. 이렇게 재미없는 제 이야기를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은 처음이네요. 말해도 괜찮은 거냐고요? 뭐, 이젠 실종될 운명이라는 저주도 풀렸을 테니까, 괜찮아요.

당신과 함께 차를 타고 예전 동네로 내려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서 가장 주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실행에 옮기는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오늘이 마침 제 생일이기도 하고요. 축하한다고요? 감사합니다.

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없냐고요? 글쎄요, 이제 나도 내 인생 알아서 살 수 있으니 다들 너무 걱정 말라고? 이 여행이 끝나고 나면 직접 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얼른 돌아가서 깜짝 놀라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싶네요. 밥을 먹고 차를 타서 멀미를 하는 건지, 졸음이 엄청 쏟아지네요. 왠지 몸도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고... 어릴 때에는 꼭 이렇게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사고가 나있었는데. 뭐 이젠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요. 눈을 좀 붙여도 될까요? 도착하면 저 좀 깨워주세요... 지금 상태론 일어날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겠네요...





결말 2.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자 동시에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사주라는 게 뭐라고, 20년 동안 감시당하다가 드디어 자유로워졌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니. 그래서 일단 이 감시에서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감시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도 저지만 그동안 나를 감시해야 하던 가족들도 감시가 생활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제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야 진정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러자 문득 이게 바로 그 무속인이 말한 실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습니다. 감시당하며 주체를 잃어버린 삶, 제 자신의 실종.

아무튼 그래서 지금부터 스스로 실종되어보려고요. 가족이든 친구든 지금만큼은 주변과 다 연락을 끊고 좀 혼자 있어보는 것부터 연습해봐야겠어요. 설마 가족들이 신고하진 않겠죠? 스무 살은 이미 넘었고, 이제 저는 자유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초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