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März 2020 @백뻘게
<2020년 10월 8일 밤 11시, 베를린에서 쓰는 일기>
어느덧 늦가을이다. 다음 주면 새학기가 시작한다.
지난 학기는 모든 강의가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다.
화면으로 보던 얼굴들을 학교에서 직접 만날 수 있게 되면 왠지 더 반갑게 느껴질 것 같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 못했던 Semesterfeier도 하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갔던 룸메이트도 곧 돌아온다.
6개월 만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이번처럼 조용한 여름은 없었다.
그야말로 많은 것을 시사하는 한 해였다.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믿기 어려운 상황들을 직면했다.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전했어도 가차없이 퍼지는 바이러스를 막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사회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어디인지, 가장 고통받는 약자가 누구인지,
얼마나 몰상식하고 말도 안되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지,
죽음 앞에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개인과 집단, 지역과 국가, 나라와 세계,
배려와 이기, 화합과 경계,
무시와 두려움, 호기심과 차별,
절망,
그리고 희망.
제2의 페스트라 불렸던 코로나 19는 그야말로 전세계를 엉망으로 휩쓸고 지나갔다.
처음엔 아시아의 개인으로부터 시작되었던 바이러스는
지역, 종교 단체, 교회로 시작되어 집단 감염으로 퍼지고
일자리로 번져 전세계의 경제를 위협했으며,
불과 몇 주만에 미국, 유럽, 아프리카까지 도달한 코로나를 피해 이동하는 사람들로
줄어들 만하면 어디선가 또 전염되어서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 사람들을 치료하던 의료진들이 죽고, 그들을 보호하던 경찰들도 죽었다.
이 죽음에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정치인도, 연예인도, 운동선수도, 심지어는 왕족도 예외가 없었다.
고통과 죽음은 공평했다. 전세계가 눈물을 흘렸고, 신음했다.
모두들 마침내 인류가 붕괴상태에 임박했다고 믿었고, 사람들은 절규했다.
각국의 의료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르고 붕괴되기 직전, 사망자가 정점에 다다랐을 때에야 백신은 개발되었다.
세번째 백신이 개발된 이후로 전세계에 창궐했던 코로나19는 서서히 사그러들기 시작했다.
확진자 수는 이제 어느덧 한자리 수가 되었고, 병원에 가서 백신만 맞으면 더이상 전염은 없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서 쇼핑몰과 성당조차도 병동으로 쓰였던 스페인도, 이탈리아도, 미국도 어느덧 안정세를 찾았다. 공항은 이전처럼 다시 붐비기 시작했고 대자연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었다.
취소되었던 파티와 축제들도 다시 열리고 있다. 이전에 예정되었던 행사들도 원래대로 열릴 예정이라 한다.
더이상 사재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치솟던 환율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가게들이 많이 문을 닫아서 거리가 썰렁하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구직자가 늘어났지만, 일자리는 반토막이 났다.
아마도 1년 뒤면 구직이 더욱 힘들지도 모른다. 내년이 졸업인데...
마스크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밖에 나가면 모두들 거리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심리는 위축되어 있는 것 같다. 이제 정말 끝인가? 기뻐서 뛰쳐나오고 싶지만 조심스러운 것이다. 정말 이 비상사태가 해결된 것인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사람들은 불안해하며 여전히 접촉을 꺼린다. 재채기에도 아직 다들 민감하게 반응한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도시는 여전히 조용하다.
불과 세달 전까지만 해도 통행금지가 되었던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사람이 타지 않은 빈 트램과 지하철이 유령처럼 지나가고,
도시간 이동은 물론이고 여행과 만남, 통행,
밖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들이 제한되었던,
그 어느 때보다도 화창하고, 조용해서 아름다웠던,
숨이 막혔던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