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성으로 쓰는 이야기 - 43
가나에서 가난은 더 이상 고난이 아니었다.
국내 장년층의 유망 직종인 지게차운전기능사였던 건우 씨가 간암 판정을 받자마자 간 곳이 바로 가나였다. 물론 가는 길도 녹록지 않았다.
건우 씨는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간암 판정을 받고 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달칵.
가족들은 건우 씨가 잠시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언젠간 나오리라 믿고.
건우 씨는 그 믿음에 보답하여 하루 만에 나왔다. 그날 그 시간, 가족들은 뜨끈한 고니탕을 끓여 먹고 있었다.
보글보글 국물 한 스푼, 말린 건어물에 소주를 짠. 고농도의 알코올이 그들의 몸에서 찰랑찰랑.
장장 23시간 19분 46초에 걸친 고뇌의 결과가 나왔다.
“가나 간다. 잘 살아라.”
떠나는 그의 손도 가벼웠고, 그의 발은 더할 나위 없이 더 가벼웠다. 무거운 건 입이었고.
그의 기습 선언에 사십 줄을 넘은 과년한 아들과 그의 부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건우 씨가 가나를 간다. 영영.”이 가능한 일인지
덧셈- 뺄셈 가늠해 보다가,
산수의 개념에 대해 아득해지다가,
결국 이 날을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부인은 가내수공업이 지겨웠고, 아들은 고작 몇 푼 벌어온다고 곁눈질까지 곁들인 건우 씨의 고나리질이 귓가에 가닐거렸다.
두 사람은 건우 씨의 뒷모습에 각각 한 마디를 남겼다.
“건우 씨가 가는구나.”
“고멘-“
건우 씨가 책상 위에 남긴 건 단 하나. 곗돈 장부에는 마지막 곗날과 금액이 적혀있었다.
오늘의 건어물값은 건우 씨가 내고 갔다!
“이게 바로 제가 본 건우 씨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 가족들의 증언 -
이에 이어 이웃들의 마지막 목격담까지 더해졌다.
“집 앞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갔어요. 우리 애가 30분을 기다리다가 결국 못 타고 왔어요. 울었다고요.”
기니만에서 피랍된 건우 씨는 이렇게 화제가 되며 심심한 사람들의 강냉이로 씹히고 있었다.
‘기행을 일삼은 사람에게 공권력을 투입하여 구출 작전을 벌이고,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게 맞는가.’
그 시간의 건우 씨는 이미 금니까지 벗겨져 있었다. 아무리 봐도 돈 될 만한 게 없는 건우 씨였다. 그래서 건우 씨는 공납을 받침대로 한 과녁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해적들의 놀잇감으로. 해적들의 눈에는 건우 씨가 돈도 없이 기니만까지 흘러들어온 것도 신기했다. 게눈 감추듯 밥을 몇 번 허겁지겁 먹었을 즈음, 군함이 왔다. 건우 씨를 구출하러 온 히어로! 특전사 군인! 하지만 건우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나로 가겠단다.
그렇게 떠넘기듯 버려지듯 던져지듯 가나에 도착한 건우 씨에게 남은 건 무엇이었을까.
거렁뱅이꼴의 건우 씨에게 더 이상 가난은 고난일 수 없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가난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그에게 어릴 적 동네를 거쳐 교내를 지나면서 지긋지긋하게 붙었던 가난이란 꼬리표.
그게 떼고 싶었다. 그는.
건우네 갓난쟁이와 부인을 건사하기 위한 모든 노력, 푼돈에 불과한 그 노력은 가난이란 감나무에서 늘 대롱대롱거리고 있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은 가난의 그늘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가난과 가까워졌고 드디어 가난이란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