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초성으로 쓰는 이야기
ㅁㅈ 이야기
미주는 미주 미시건의 한 미장원에서 모주를 따르고 있다.
미주의 어렸을 적 별명은 메주였다. 미주와 발음이 유사해서? 그랬다면 미주는 무진장 만족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었다. 매정한 꼬마들은 얼굴에 꽤나 인색하고 목젖에 솔직해서 미주의 못생김을 1절, 2절, 아니 몇 절씩 노래했다.
“이미주는 매주 매주 못생겨지네 매주 메주 이메주”
망작에 가까운 뮤-직이었지만, 조금 더 강하게, 메조 포르테의 정신으로 꼬마들의 목청은 커져갔다. 익살스러운 몸짓까지 더해. 안타까운 건 그 꼬마들은 인간 말종이 아니라는 거다. 으레 있는 평범한 아이들이기에 그 무리는 멸족될 리 없었고, 커갈수록 모질어질 뿐이었다. 그에 반해 미주의 맷집은 아주 약했다. 맞짱 뜰 생각은 과분했고, 멍하니 책상 위 먼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어느 날은 맹장이 터져 실려갔다. 명중! 문장 하나하나, 문자 하나하나가 밑줄을 친 채 미주에게 못질되고 있었다.
“신랑 신부 맞절!” 전주 이 씨 문중의 귀한 딸 미주는 새로이 미제로 태어나길 다짐했다. 오랜 고향인 전라북도 무주를 떠나, 면작농사를 짓는 아버지 이만중 씨를 떠나, 마징가 제트를 닮은 파란 눈의 스미스 씨를 따라 미지의 세계로.
과거의 미주를 묘지에 묻어버리고 싶던 미주는 비행기 안에서 새로운 영어 이름을 구상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Mary, Joy, Maggie’ 미주의 초성을 담아 스미스 씨가 미색 모조지에 쓴 이름들.
맨 끝의 ‘Maggie’가 화근이었다.
“메..지? 아이 헤이트! 메지!”
메지라는 발음은 미주가 메주를 떠올리기 모자라지 않았고, 미주를 가시로 무장시켜 버렸다. 미주의 과거에 무지한 스미스 씨였을까? 영어에 무지한 미주였을까?
이 문제의 맹점은 누구의 무엇이었을까
씩씩거리는 미주가 떠올린 건 미주를 담지 않은, 메주를 닮지 않은 멋진 책받침 여신들이었다.
“브룩 쉴즈,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기진맥진하면서 내린 소피를 마중 나온 건 스미스 씨 여동생과 그 매제였다. 시누이 부부의 제너럴 모터스 자동차에 올라탄 소피에게 매연이 따라붙었다. 90년대 미시건, 흔하지만 흔치 않은 국제결혼에 사람들은 소피가 스미스 씨와 모종의 거래를 맺었다고 수군댔다. 스미스 씨가 결혼을 대가로 미주 집안의 물주가 되어준다든가, 미주가 매질을 당한다든가. 미주 막장 드라마는 개연성이 탄탄했다. 그 드라마가 명작이 되지 못한 건 아무도 그들의 뮤즈인 미세스 스미스의 결말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니하오 -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미세스 스미스의 조롱받던 얼굴과 깡마른 몸은 여기선 누군가의 몽정이었으며, 환한 길거리에서도 손쉽게 누군가의 바지를 묵직하게 했다. 미장원 손님은 어디선가 마작을 배워왔다며 마작판을 꺼내 들었고, 맹자를 몇 자 읊기도 했다. 시누부부는 반가운 눈빛으로 마장면을 먹어봤다고 이야기했다. 늘 미세스 스미스의 얼굴은 모자로 덮여있었고, 손에는 맥주가 들려 있었다. 맨 정신의 미세스 스미스를 본 사람이 있을까?
무주의 까만 밤, 미주의 한 낮, 이만중 씨의 부고가 들려왔다. 미주에서는 으레 목적성 없이도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절에 모인다. 미세스 스미스는 한 번 즈음은 모임, 아니 한인타운에라도 가봄직했지만, 십 년 동안 한국 사람들이 있는 곳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런 미주가 곧바로 제너럴 모터스에 시동을 켰다. 한인 마트에서 망자가 좋아하던 멜젓과 막창을 어렵사리 찾았다. 과연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궁금해지는 가격이었지만 달리 선택지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망자가 마시던 모주는 매대에 없었다. 그래도 마트 주인이 마음이 약해 망정이지. 미주의 뭉근해진 눈망울에 책임이 막중해진 마트 주인은 수소문을 하여 알던 사람이 차례에 쓰고 남은 모주를 구해왔다. 집에 오니 KBS World 채널이 틀어져 있었고, 미스터 스미스는 매직키드마수리를 보고 있는 아이를 붙잡고 어디선가 사 왔는지 명주 한복을 입히고 있었다. 미주는 모주를 따랐고, 한복을 입은 아이는 어설픈 절을 했다. 이런 미장센이 다 있을까. 한복에는 메이드인차이나 모조품 딱지가 달랑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