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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Dec 29. 2021

[7주] 너는 치즈란다

태명 정하기

처음 초음파를 본 그날 밤이었다. 


"여보, 우리 아이 태명을 지어볼까?"


내가 슬쩍 말을 꺼냈다. 한국에 있는 동생은 언니의 임신 소식을 알자마자 '언니, 태명은 뭘로 할 거야? 네덜란드니까 화란이가 되는 건가? 뭘로 할 건데?'라며 귀엽게 채근하던 차였다. 게다가 부모님께도 자주 소식을 전할 텐데 '아가', '아기',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귀여운 이름 하나 있으면 더 애착도 생기고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가 없어서 남편에게 같이 생각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아기 태명 짓기', '태명 짓는 방법' 따위를 검색해 보았다. 태어날 해의 동물에 따라 정하기도 하고, 뱃속 아가도 잘 들을 수 있도록 된소리와 거센소리가 적절히 섞인 태명을 붙인다고도 하고, 가장 고전적으로 태몽에 따라 정한다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이 아가와 네덜란드에서 첫 만남을 가졌으니 뭔가 네덜란드스러운 태명을 붙여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Jan(얀), Esther(에스더) 같은 네덜란드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우리랑 동떨어진 것 같고. 이러다간 동생이 이야기한 대로 '화란이'가 될 참이었다. (이 이름도 귀엽긴 하다만.)


그러다 우리 집의 '아이디어 뱅크' 남편이 운을 띄웠다.


"치즈 어때?"
"치즈?"
"응, 네덜란드의 특산품이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잖아."


맞다. 나는 라면에도 꼭 체다 치즈 한 장을 넣고, 어딜 가든 치즈 토핑이 있다면 추가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네! 그리고 이게 태몽인진 모르겠지만, 몽글몽글, 갓 나온 모차렐라 치즈 같은 게 꿈에 나오긴 했어." 


"그럼 이걸로 결정하자, '치즈'."


그렇게 우리는 태아의 이름을 정하고 조금은 어색하게 서로를 치즈 엄마, 치즈 아빠라고 (가뭄에 콩 나듯) 불러보기 시작했다. 아직 이름이 입에 붙기까지는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양가 부모님께도 다음 날 태명을 알려드리니 다음 소식부터 '치즈가 잘 크고 있구나~' '치즈맘 몸 건강히 챙기고 있어~'라며 슬쩍슬쩍 따뜻한 말 틈 사이에 태명을 넣어 이야기해 주시기 시작했다. 


세상에 너의 첫 이름을 소개해 줄 기회를 줘서 고마워, 치즈야.


P.S. 태명에 진심인 내 동생은 그다음부터 온갖 치즈 이모지를 찾아서 보내기 시작했다. 열정의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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