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산사와 첫 상담
첫 초음파를 보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조산사와 첫 상담 약속을 잡았다. 남편은 급하게 회의가 잡혀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조산원을 찾았는데 이럴 때면 집에서 가까운 게 얼마나 다행인지!
두 번째 온 조산원은 조금 익숙한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지난번과는 다른 조산사가 우리를 불렀다. 조산사 K, 2019년에 졸업하고 우리 조산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새내기 조산사였다.
본 상담의 가장 큰 목적은 산전 검사(Prenatal Screening)에 대한 설명이었다.
네덜란드의 산전 검사는 크게 2가지로 나눠져 있다. 다운증후군 등 염색체 기형을 발견할 수 있는 ①NIPT(non-invasive prenatal testing) 검사와 신체적 기형을 발견할 수 있는 ②정밀 초음파 검사이다. 이 모든 검사는 산모의 선택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산사는 임신 초기에 산모에게 이들 검사에 대해 자세히 고지할 의무가 있다.
NIPT는 한국에서도 많은 산모들이 선택하는 산전 검사인데, 11주차부터 검사가 가능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운 증후군, 에드워드 증후군, 파타우 증후군 등 태아가 염색체 이상 질환을 갖고 있는지를 목적으로 한다.
* 3주 뒤 실시한 NIPT 검사 후기는 위 글 참고
네덜란드에서는 자기부담금 175유로(약 22만 원)를 지불하면 이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은 국내 가격에 비해 1/3 정도인데 안 할 이유가 없다며 적극적으로 나를 설득했다.
정밀 초음파 검사는 13주차와 20주차에 이루어지는데, 13주차 초음파는 지난 2021년 9월부터 모든 산모에게 지원이 되는 것으로 변경된 모양이다(출처: NL Times).
두 검사 모두 전문 초음파 검사자(sonographer)가 진행해야 하므로 담당 조산사 사무실에서 해당 인력이나 기계가 없는 경우 다른 전문 기관으로 가야 한다.
13주차라고 해서 정확히 13주차에 검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12주 3일차에서 14주 4일차 사이에 유연하게 받을 수 있다.
20주차 검사도 마찬가지로 18주차에서 21주차 사이에 받아야 하는데, 검사 기관에 따라 너무 이르거나 늦게는 잡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조산원에서 안내받은 일정을 따르도록 한다.
참고로 네덜란드에서 산전 검사를 앞둔 산모라면 전문 초음파 기관에 서둘러 연락을 하길 바란다. 13주차 검진을 위해 7주차에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이미 집 근처의 기관은 예약이 다 차 있어서 뜻하지 않게 조금 먼 곳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초반에 몸을 움직이기 힘든 산모라면 얼른 예약을 하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13주차와 20주차 검사의 주요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출처: 네덜란드 보건복지체육부 안내 책자 PDF)
13-week scan
• Early in pregnancy. The baby is smaller and less developed. (임신 초기라 태아는 작고 아직 덜 발달되어 있습니다.)
• Some (severe) abnormalities can be seen. If follow-up diagnostic testing is necessary, you will have more time to decide what to do considering the test results. (일부 기형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 The sonographer does not look to see if the baby is a boy or a girl. (초음파 검사자는 태아의 성별을 감별하지 않습니다.)
20-week scan
• Later in pregnancy. The baby is bigger. (임신 중기라 태아가 더 큽니다.)
• More details can be seen. If follow-up diagnostic testing is necessary, you will have less time to decide what to do considering the scan results.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검사 결과를 토대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 The sonographer can usually see if the baby is a boy or a girl. You will only be told this if you ask. (초음파 검사자는 대부분 태아의 성별을 감별할 수 있습니다. 오직 산모가 물어볼 경우에만 성별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성별 고지에 대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산모가 물어볼 경우에만 알려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의료법상 임신 32주 전에 의료인이 성별을 고지해 주는 것은 불법인데, 네덜란드는 이보다는 조금 더 완화된 기준인 20주를 기준으로 운영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유전자 검사인 NIPT 검사를 하면서 성별을 고지해 주기도 한다는 미국만큼 진보적이지는 않다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싶기는 하다. 한국에서는 온갖 각도법이니 뭐니 하면서 아이의 성별을 빨리 알고 싶어 한다는데 여기 네덜란드에서는 오히려 알고 싶다면 15주차~18주차 사이에 "Geslachtsbepaling(Gender scan, 성별 감지 초음파)"를 따로 예약할 수도 있다. 가격은 45유로(약 6만 원) 수준이다.
조산사 K는 산전 검사 이외에도 산모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해 주면서 혹시 입덧이 심하다면 가정의(Huisarts, GP)에게 연락을 하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조산원을 나서며 나는 '영어로 원활하게 소통이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네덜란드는 주재원 가족이 살기에 정말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독일이었더라도 물론 의료진은 어느 정도 영어를 했겠지만 괜히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있었을 텐데 여기서는 당연하게 영어를 쓰는 태도가 조금 더 안심이 되었다. 남은 임신 기간 내내 이런 인상은 계속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