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배워보기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접했던 언어를 기초부터 배워본다면

by 수민

이 글은 지난 10월 초부터 약 두 달간 일본어를 배워 본 경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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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일본어?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늘 물어보는 질문, "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해요?" 그러면 열에 아홉쯤은 K-Pop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한국어를 접해보고 배우고 싶어졌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학생들은 한글을 모르더라도 "여보세요", "아니~", "뭐라고?" 같은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은 단어와 구를 신기하리만큼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비체계적으로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 친구들에게 한글은 어떻게 느껴질까? 또, 처음에 배우는 "저는 한국 사랍이에요." 같은 내용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반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니 문득 든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일본어를 배워 보기로 했다. 10대 때부터 나는 일본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접해 왔지만 히라가나조차 건드린 적이 없었다. 20대부터 일본 콘텐츠를 덜 보기 시작해서 당장 배울 의지가 없어지기도 했고, 일본은 은퇴하고도 가까운 해외여행 겸 갈 수 있으니 나이 들어서 천천히 즐겁게 배워 보자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공부했는가

먼저 온라인 외국어 학습 사이트에서 과외 선생님을 구하기 시작했다. 일본어 관련 교사 자격증 보유자이면서 교습 가능 시간이 유럽 시간대와 맞는 사람이되, 가능하면 한국어도 조금은 배워 본 사람으로 찾아봤다. 그래서 찾은 선생님은 미즈호(Mizuho) 선생님, 이집트 카이로의 한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계신 선생님이었다.


화면 캡처 2021-12-08 142324.jpg "전문 강사" 카테고리를 선택하면 언어 교사 자격증이 있거나,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로만 목록을 뽑아 볼 수 있다. (출처: 아이토키 italki)

의외로 한국어를 너무 잘하셔서 영어 반, 한국어 반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첫 시간에는 히라가나를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자주 보이던 の(no) 같은 글자들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다. 수업은 보통 30분으로 진행했는데, 60분을 한 번 해 봤더니 너무 배울 것이 많아서 취미로 배우는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 30분 동안에는 선생님께서 교재 화면이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공유해 주시곤 했다. 그렇게 10월 6일부터 12월 6일까지 딱 두 달 동안 매주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했고, 마지막 시간에는 3과의 기초적인 동사 변화를 배우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느낀 점, Takeaway

첫째, 글자 배울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 내가 모르던 그림, 기호들이 소리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던 단어나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즉각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듣기, 말하기를 연습할 때보다 읽고 쓰는 연습을 할 때 더 즐거웠다. 특히 단순히 히라가나를 깜지에 쓰듯이 쓰면서 외우는 걸 하면서 학생 때로 돌아간 느낌마저 받았다.


다만 이 점은 선생님께도 말씀드린 부분인데 처음 1, 2과를 배울 때 히라가나가 로마자로 병기되어 있어서 오히려 글자 습득이 생각만큼 빠르게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선생님도 약간은 동의를 하면서도 "그래도 수민 상, 정말 히라가나를 빨리 배웠어요."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둘째, 비대면 수업에서는 PDF보다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정말 편하다. 히라가나를 배울 때 장단음을 배울 때 조금 헛갈린다고 이야기했더니 다음 시간에 슬라이드를 만들어 오셔서 설명해 주셨는데 확실히 PDF로 된 교재 일부를 보여주는 것보다 더 집중할 수 있었고 눈이 편안했다.


셋째, 첫 5분 동안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어색하기도 하고, 초급이니까 일본어로 뭔가를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니 한국어든 영어든 상호 간에 편안한 언어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면서 두뇌도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가끔 이 5분에 선생님은 지난 시간에 배웠던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셨는데 복습에도 좋았던 것 같다.


넷째, 한국어를 아는 선생님으로 찾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한국어 문법을 이해하고 계시니 쉽겠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알아서 빠르게 넘어가 주시는데 그 부분이 좋았다.


반대로 조금 힘들었던 점도 있었는데, 수업이 진행될수록 수업 형식 자체가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1, 2과에서 했던 단어 > 문법 > 연습 > 활용 > 대화 > 듣기 연습 방식으로 3과까지 진행되다보니 약간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었다.


또, 단어를 따로 수업 시간에 학습하지 않는 것이 조금 어려웠다. 우리 수업에서 단어는 숙제로 한 번씩 읽어 오라고 내어주고 수업 시간에 활용을 계속하면서 익히는 방식이었는데,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기초 단어야 나도 이미 아는 것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는데 의외로 히라가나와 연계해서 외우려다 보니 혼자 하기가 부담스럽기도 해서인지 생각만큼 잘 외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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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초급 대상 한국어 수업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워크숍을 끝내는 단계에서 흔히 쓰는 "Start, Stop, Continue"이라는 프레임워크가 있다. 우리가 이번 워크숍을 바탕으로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Start), 무엇을 그만할 것인지(Stop), 그리고 이전부터 하던 것 중 계속할 것은 무엇인지(Continue)를 토론해 보는 것이다.


그럼 이 툴을 사용해 지난 일본어 학습 경험에 비추어 나의 초급 대상 한국어 수업을 돌이켜보자.


1. Start

우선 체류 중인 나라 언어는 기초라도 반드시 배울 것이다. 지금 있는 네덜란드는 워낙 영어로 소통도 잘 되는 데다 네덜란드어와 독일어가 비슷해서 왠지 배웠다가 괜히 독일어마저도 흔들릴 것 같아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전화 좀 바꿔 주세요'라는 예문에서 '좀'이 뭐냐고 묻는 네덜란드 학생에게 'een beetje' (a little, a bit)이라고 직역해서 설명했다가 오히려 학생이 이상하게 생각해 결국 다른 한국어 전공 중인 네덜란드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던 적이 있다. (덕분에 말이 되는 다른 단어로 알려줬는데 지금은 또 까먹은 게 함정...)


그래서 네덜란드 이후에 또 어느 나라로 가게 될 진 모르겠지만 가게 된다면 반드시 초급 수준의 현지어는 수료하고 싶다. 단순히 현지인과의 소통 그 이상을 위해서 말이다.


또, 수업 형식을 조금 다양하게 만들어볼 예정이다. 처음에는 1:1 비대면 수업에서 지루할 거라는 생각에 슬라이드와 VBA로 간단한 게임도 만들면서 했는데 지금은 나도 매너리즘에 빠졌는지 매 번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듯하다. 틀이 있어 안정감은 있지만 지루해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2. Stop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아이스브레이킹 없이 바로 숙제 확인하고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이제 그만! 보통 55분 수업에서 5분은 생각해보면 그리 길지도 않은데 왠지 모르게 목표한 진도가 많거나 아니면 숙제에서 코멘트할 내용이 많은 날에는 인사만 하고 바로 수업을 시작하곤 했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아주 짧게라도 일상적인 대화를 꼭 하도록 하자.


3. Continue

체험한 바와 같이 비대면 수업에서 슬라이드의 위력은 대단한 것 같다. 가끔 너무 귀찮고 힘들긴 한데, 그래도 매끈한 수업 진행을 위해서는 계속 뚝딱뚝딱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숙제. 계속 숙제를 내어주되,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좀 더 손으로 쓸 수 있는 숙제들을 많이 내어줘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숙제가 없는 날에는 복습할 수 있는 슬라이드 한두 장 정도를 꼭 넣어주는 걸 까먹지 말자.


마지막으로 초급부터 단어 학습에 조금 더 신경 쓰기. 일본어 수업을 듣기 전까지는 사실 이렇게까지 어휘 학습에 시간을 많이 들일 이유가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의 비중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마무리하며

지난봄부터 꾸준하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독일 고등학생이 있다. 이 친구는 최근에 '예쁜', '즐거운', '재미있는'과 같은 관형사형 어미를 배웠는데, 이 수업이 끝나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브이 앱에서 맨날 OO가 '좋은 친구예요'라고 말하는데 이제 알겠어요. 항상 '좋아요'가 어떻게 '좋은'이 되는지 궁금했거든요."


해맑게 웃던 그 친구에게는 그날 배운 내용이 모호하던 한국어가 명시적인 앎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새내기 선생님으로 비체계적으로 한국어를 배워 온 학생들에게 그런 순간을 더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그러니 이번 일본어 학습기를 통해 느낀 점을 이후 한국어 수업에 잘 반영을 해야겠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나 또한 맛보기 위해 언젠가 나도 다시 일본어를 배우게 될 것이다. (뭐, 30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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