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적부터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떤 이유인지 나는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산속 절에서 할아버지의 반평생을 지내셨다. 그 덕분에 난 할아버지가 계신 절에 주말마다 방학 때는 아예 스님들하고 터를 같이 잡고 살았다.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셨던 할아버지한테는 신기학 어려운 과학책들이 많았지만 내가 심심할 때 나름 시간 때우기 좋은 독서 책들이었으며 항상 붓글씨를 쓰시는 할아버지 옆에 먹을 갈고 그 옆에서 나도 글씨 쓰고 수묵화 수채화를 그리며 자유롭게 놀았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한 번도 공부해라 공부를 잘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행복한 것 그거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새벽 4시 어김없이 스님들 목탁소리에 일어나고 경전 읽는 소리에 나도 날을 시작하고 하루 종일 놀고 놀았다. 그러다 절에 오시는 할머니들의 울음들과 그리고 동시에 웃으시는 모습들을 보며 혼자 생각놀이라는 것느 하기 시작했다.
'자식이 먼저 부모보다 앞서가면 저렇게 슬피 우는 건가? 그렇게 마음이 아픈 건가?'
" 이번에 자식이 또 시험에 떨어지면 안 돼요." 하고 계속 당부하는 분들을 보며 '저렇게 하면 시험에 붙는 건가'
" 이번에 큰 사고가 났어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데 빨리 퇴원을 할 수 있게 부탁드려요."
근심 어린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에 '사고가 나면 절에 와서 사고가 안 나게 해결해달라고 부탁하고 가는 어른들 그리고 빨리 병이 회복되게 해달라고 하는 데 삼천베를 올리면 빨리 병이 정말 회복이 되는 걸까?'
할아버지가 있는 절에서는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의 모습들을 경험하게 된 셈이다.
나에게는 알 수 없는 의문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 삶. 할아버지는 그분들의 모든 인생의 삶을 그저 묵묵히 들으셨다. 워낙 말이 없는 분이시긴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들이 할아버지들이 몇 시간을 길게 늘려놓는 그들의 인생을 말없이 들으시고 고개만 끄덕이셨다. 할아버지는 무엇인가 답을 알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답을 하시지 않는 건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어른분들이 집에 다 가시고 나면 할아버지는 나와 그제야 놀아주셨다. 한자를 가르쳐 주시거나 그림을 같이 그려주시거나 산수를 가르쳐 주시거나 과학을 가르쳐 주시거나 그러다 나를 데리고는 산을 데리고 올라가 운동도 시켜주시고 내려오는 길에 꼭 아이스크림도 사주셨다.
그럴 때 나는 할아버지한테 " 저 할머니들은 왜 마음이 슬프신 거야? 할아버지 자식이 먼저 죽는 게 그렇게 슬픈 일이야? 그럼 부모는 저렇게 아픈 거야? 내가 궁금했던 것을 슬며시 물어본다.
할아버지는 그러셨다. " 마음이 아프지. 그러나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그렇게 간 것도 운명인걸. 이미 결정된 운명을 받아들이는 거지.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 위해 이 곳에 오는 거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내가 스스로 내가 먼저 사람의 인생에 대해 관찰해보고 느끼고 깨닫길 원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 게 아니라 나에게 보여주신 것으로 할아버지는 손녀가 앞으로 살아갈 험난한 인생길을 내가 마음이 조금은 덜 아프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이렇게 대신하신 것 같다.
그래서 뒤돌아 보니 나는 어느 순간 내 삶의 어떤 형태에서 받아들이는 연습을 이미 하고 있었다. 이미 나에게 어떤 것은 결정된 운명이 있는 것에 대한 받아들임. 그 받아들이는 데에 어떤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 것도 있었고 시간이 짧게 걸린 것도 있었고. 내가 앞으로 진취적으로 나아가기도 했지만 받아들이는 인생의 연습도 강도 높게 해온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지금 현재 처한 내 상황을 받아들이는 마음 아래 또 다른 시작도 또 다른 방향도 그리고 더 나아갈 수 있는 답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난 지금의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조용히 내일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