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구름 같은 게 눈앞에 아른거려요
"알사탕 하나가 콕 박혔네." 누나가 말했어요.
알사탕이 뭔지는 잘 몰라요. 먹으면 큰일 나니까 먹어본 적은 없거든요. 그냥 사과처럼 달달 할 텐데 조금 더 달디 단거라고 생각해 봤어요. 서울에 사는 누나는 가끔 집에 와요. 누나가 오는 날의 산책은 엄마랑 가는 산책이랑은 다릅니다. 잘 안 가는 연제리 공원에 가거든요. 거기는 습지가 무성하고 외져서 사람들이 잘 안 와요. 그래서 누나는 가끔 나를 풀어줘요. 나도 그게 너무 좋아서 누나랑 가는 산책이 좋아요. 근데, 사실 이제는 조금 힘들어서 집으로 가는 걸음을 서둘러요.
어렸을 때는 누나랑 같이 살았거든요. 그때는 하루에 한 시간을 내리뛰어도 힘들지가 않았어요. 근데, 이제는 조금 걸으면 목도 마르고 눕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기억 속에 집이 있던 방향으로 누나를 끌고 갑니다.
그날 집에 온 누나는 나의 짐을 잔뜩 가지고는 누나 냄새가 가득한 어느 집으로 날 데려갔어요. 조금 낯설지만 누나 냄새가 나는 것들이 많아서 나는 알았어요. 집 밖을 나가 오랫동안 오지 않았던 날들에는 여기에서 있던 거구나 하고. 왠지 누나랑 여기서 지내게 될 거 같아요. 내가 잘 때 쓰는 방석을 여기에 가져다 뒀거든요. 그 방석이 있으면 어쨌든 잠은 거기서 자는 거예요.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엄마나 누나가 있으면 돼요.
나는 이제 14살이 됐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 계단이 조금 무서워졌어요. 희뿌연 구름 같은 게 눈앞에 아른거려서 예전에 잘 보였던 것들이 희미해졌거든요. 크게 중요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좋기도 해요. 예전에는 아저씨들이 다가오는 게 너무 무서웠는데 이제는 아저씨인지 학생인지 구분이 잘 안 가서 안 무섭거든요. 근데 계단에서는 몇 번 넘어졌어요. 그래서 계단 같아 보이는 수평선이 눈앞에 있는 거 같으면 주춤하게 돼요. 그래도 누나랑 나는 또 다른 규칙을 만들어 냅니다. 누나가 "조심" 하면 일단 멈추면 돼요. 앞에 계단이 있거든요. 누나가 "올라가!" 하면 점프를 하면 됩니다. 가끔 내가 못 듣고 넘어지기도 하는데 뭐 한 두 번이니까 괜찮아요.
그리고 자고 일어났을 때 누나를 바로 찾는 게 조금 어려워졌어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누나가 나를 여러 번 불러요. 소리가 나는 쪽을 찾으려고 하는데, 사실 그게 잘 안 돼요. 누나 냄새가 집안에 가득이라 냄새로 찾는 건 불가능해요. 그러면서 냄새도 못 맡냐고 하는 건 조금 너무한 것 같아요. 어쨌든 처음 며칠은 누나를 바로 못 찾아서 누나가 울었습니다. 부엌의 커튼이 누나 같아 보이기도 하고, 현관문의 신발장이 누나 같기도 하고 하여튼 길고 높은 것들은 다 누나 같아서 한 번씩 쳐다본 건데 누나가 울어서 조금 미안했어요. 그게 그렇게 서운할 일인가요. 그래서 누나가 부르면 누나가 자주 들어오는 현관문부터 쳐다보기로 결정했어요. 처음 며칠은 울던 누나도 이제는 그냥 여러 번 내 이름을 불러주고 말아요. 내 눈에 하얀 알사탕이 콕 박혀서 그런 거래요.
가끔 전봇대에 쿵 하는 것도 눈 앞에 유리문이 있는 줄 알고 움찔하던 것도 계단이 무서워진 것도 다 알사탕 때문이었어요. 근데 이제 고양이를 봐도 안 놀라고 갑자기 사람이 뛰어도 놀랄 일이 없어진 것도 알사탕 덕분이거든요. 그래서 마냥 나쁘지만은 않아요. 어쨌거나 눈만 감으면 누나랑 엄마 얼굴이 떠오르니까 보이지 않는 거쯤은 상관없어요.
14살의 나는 갑자기 누나랑 살게 됐어요. 잠이 늘어서 한숨 푹 자고 나면 누나가 돈 벌고 돌아와요. 나갈 때 그러거든요. "누나 돈 벌어 올게" 하고요. 누나는 우는 일도 웃는 일도 많고, 집에서 말도 많이 해요. 친구랑 수다도 많이 떨어서 나는 누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요. 확실히 엄마랑 살 때 보다 시끄럽고 심란한데, 그래서 누나만 나가면 잠이 그렇게 쏟아지나.
어쨌든, 그러니까 나만큼 누나를 잘 아는 건 없을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 누나는 조금 특이한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