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함에 대해서

해방 뒤에 찾아온, 뜻밖의 감정

by 숨은결


최근 5년 간 내 일상은 늘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스케줄로 이루어졌기에 무척 힘들었다. 늘 긴장감과 압박감이 함께 존재했다. 특히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2년은, 석사와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렇다, 시달리고 또 시달렸다.


석사 때는 좀 못해도 교수님이 너그럽게 봐주시기도 했지만, 박사과정에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요구되는 공부량이며 발제에 대한 완성도 모두 항상 신경 써야 했고 종강하는 그 순간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치열하게 공부했다.

죽을 것처럼 숨 막히게 생활한 2년이 생각보다 훅 지나가버렸다. 이제 학교에서도 공식적으로 수료생이 되었기에 과제, 발제 등에 대한 책임감 일체가 사라졌고 자유를 되찾았다. 학기가 완전하게 마치고 난 후에 잠시 즐거웠고 해방감을 느꼈다. 무사히 코스웍을 마친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공부하지 않는 나 자신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과 동시에 심심하고 무료함이 몰려온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냥 무료하기 짝이 없다. 무료함은 단순히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게 아닌 듯하다. 몇 년간 늘 긴장과 압박에 사로잡혀 있던 몸과 마음이 비어버린, 바로 그 공백에서 생겨나는 허전함이 바로 무료함일지도 모르겠다.


항상 공부하면서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박사과정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힘들게 공부했고 경쟁도 치열했다. 물론 이제 공부보다 돈 버는 일에 더 힘을 써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박사과정 중에는 돈 버는 일보다 학업이 우선이었기에 재정적으로는 다소 궁핍하게 지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해야 할 것도 많고 처리할 일도 많은데, 허전함과 무료함과 씨름 중이다.

텐션이 엄청 떨어진다. 선배에게 들은 바로는, 박사과정 수료하고 반년 정도는 우울감에 시달린다고.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 좀 느껴진다. 몇 년간 내 어깨 위에 놓였던 그 엄청난 무게의 긴장과 압박이, 하루아침에 마법처럼 사라져 버렸다. 후련하고 시원해야 마땅한데, 역시 사람은 간사한 존재인가.


이제 다들 박사논문 써야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박사학위 받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 현실은 정말 잔혹하다. 박사과정 수료하고 나니, 이제 박사논문 쓴 분들이 학위를 가졌을 때 어떤 이점이 있는지 점차 강조한다. 그리고 점점 내가 자리 잡을 곳은 아주 좁은 세계로 한정되는 것 같다.

전공 공부보다 매일 글을 쓰는 성실함이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내 경험을 끌어모은다고 해도 한계가 있고, 그렇다고 늘 창작을 할 수는 없는 게 사람이 아닌지. 그래서 요즘은 이전에 내가 하지 못한 일들을 시도하고 있다.


예로, 이렇게 공개적인 글쓰기라든가, 혹은 내가 생각한 기획안을 투고해 본다던가 하는 일들이다. 몇 년 전과 지금의 나는 좀 달라졌다. 여러 영역에서 생각이나 관점이 변했고, 달라지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다. 새로 장착한 무기를 더 갈고닦아서 이제 앞으로 전진하는 일만 남았다.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의 나 자신은 더 높은 수준의 성과를 요구받고 있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든, 가장 중요한 점은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또 동시에 주변을 잘 돌아보는 일도 포함한다.

혹시 여러분도 치열했던 시간이 끝난 뒤, 예상치 못한 무료함을 느껴보신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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