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은 늘 메아리로 돌아온다

굳이, 선택한 방향에 대해서

by 숨은결


누구나 한 번쯤 ‘굳이? 싶은 선택을 했던 경험이 있지 않을까?

부처스 크로싱을 읽고 있다. 중반을 넘어섰는데, 문득 주인공 앤드루스의 선택에 대해 의문이 떠올랐다. 윌리엄 앤드루스, 그는 하버드대 3학년을 다니다가 학교를 자퇴하고 유산을 받은 돈으로 부처스 크로싱에 왔다. 오자마자 그가 한 일은, 들소 사냥대를 수소문한 것이다. 그의 인생 대로는 열린 길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왜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방향을 틀었을까? 열린 문을 두고, 왜 굳이 낯선 길로 향했을까?

책의 초반을 읽는 중에, 이미 그가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가 순간 머릿속에 그려졌기에, 쭉 의심 없이 앤드루스를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었다. 19세기에 하버드대생이었다면, 법조계로 진로를 잡아 변호사가 되는 길을 택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앤드루스는 모험의 여정에서도 큰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와 다르게 난, 변화를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모순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선뜻 선택하기에는 마음의 그릇이 작다. 그럼에도 내 삶에서도 어쩔 수 없이, 자갈길을 선택했던 경험이 있고, 그 시간은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를 떠올리면서 동시에 생각난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루스 긴즈버그. 이분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작고하셨다. 연방대법원의 판사로 재직하셨지만, 당시 여성으로서 법조계에 뛰어든 것은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앤드루스와 다르게, 닫힌 문을 열어야 했던 사람! 결국에는 사회적 제도의 큰 장벽을 뛰어넘고 성공하셨다.


앤드루스는 허구의 인물이고 긴즈버그는 실제 생존한 인물이지만, 두 사람 모두 프런티어 정신이 강한 사람들로 보인다. 부처스 크로싱의 결말은 아직 모르지만, 앤드루스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오로지 집중하는 유형의 사람인 것 같다. 그는 말이 많지 않다. 필요할 때 말하는 걸 제외하면 조용하다. 오히려 그는 존재감이 부각되지 않는 편이다.


반면, 긴즈버그는 성별이라는 젠더의 특수성으로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앤드루스와 비슷한 점은, 이분 역시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다만, 필요한 말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 허다했다. 두 사람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인생의 커다란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뭔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인간이라면 익숙하지 않은, 변화 많은 상황 앞에서는 위축되고 겁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이 가진 그 어떤 것이 내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한 건, 처음부터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이다. 아마 안정적인 직업이 보장된 길로 나아갔을 것이다. 혹은 어쩌면 여전히 가지 않은 길에 있는, 미련과 유혹에 저항하지 못한 채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까.

프로스트의 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지 않은 길은, 늘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것 같다. 어떤 인생 시점에서도. 세상을 앞서간 많은 이들 또한 후회는 했다. 그러니 나 같은 범인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고 해서 큰일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나대로 후회하면서 또 뒤에 남긴 게 무엇인지 돌아보면서, 그냥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당신에게도 여전히 메아리처럼 남아 있는, ‘가지 않은 길'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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