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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Aug 10. 2020

(일상)
떠나야 했던 이유!

내 안의 반란

                         


2013. 09. 26.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모른다. 그동안 여행이 절박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열병에 들뜬 사람처럼 나는 떠나고 싶어 했다. 아니 반드시 떠나야 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50이 되자 갑자기 삶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 이런 것은 사치이며, 여유로운 사람들에게나 찾아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기침처럼 인생의 허무함은 끊임없이 나를 공격하고 짓눌렀다. 그렇게 속으로 휘청이고 있던 같은 해 6월, 친정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세상의 어느 어머니가 안 그러셨을까마는 6남매 중 막내인 나를 유독 애달파하시며 살뜰히 챙기셨다. 막내니까 그러려니 하는 언니들도 한 편으로는 시기(?)를 할 정도였으니 어머니의 막내딸 사랑이 유별나긴 했던 것 같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출근하고, 운동하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면서도 속으로는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은 나를 더 심하게 몰아붙였다.





친구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그동안 효자 남편과 산 덕분에 나의 휴가는 늘 시댁에서 보내야 했다. 시댁이 멀리 있어 휴가 때가 아니면 가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결혼 이후, 일 년에 받는 휴가를 몽땅 시댁에 쏟아부었다. 휴가를 해서 왜 시댁을 오느냐는 사촌 형 말에도 남편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의 의지(?)를 꿋꿋이 실행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가고 방학 중에도 학교를 가야 하는 고마운 보충수업 덕분에 그제야 조금씩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혼자 여행을 자유롭게 갈 주제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50대에 찾아온 생각의 일렁임은 사춘기만큼이나 나를 흔들었다. 속에서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화산처럼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무작정 남편에게 여행 통보를 했다. 친구와 다녀오겠다는 송곳 같은 통첩에 어안이 벙벙한 남편을 뒤로하고 보따리를 싸서 떠났다.





때로는 타의와 관습이, 때로는 나 자신이 그어 놓은 선 안에서 오롯이 맨 정신으로 버티며 살았다. 아이들이 자라서 여유가 되어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나는 주름진 중년의 아낙이 되어 있었다.

행복의 이유라고 믿었던 것들이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내가 없어도 그들은 아무 일 없는 듯 여전히 잘 살고 모든 것들은 다 잘 돌아가고 나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 따위는 전혀 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출산할 때마다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고 그때마다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나이 오십을 넘기고 갓 아이를 낳은 산모처럼 나는 또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잃어버렸다. 거기에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자꾸 극단적인 생각으로 나를 유혹했다.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다. 일단 무조건 나가는 것이 이유였고 어려서부터 막연한 이끌림이 있었던 그리스를 선택했다. 





막상 떠나보니 낯선 것들이 나를 긴장하고 설레게 했다. 깊은 수렁에서 나와야 할 이유가 조금 보였다. 터키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벌판을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작고,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삶 또한 겨우 한 귀퉁이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편에서 내가 힘들어할 때, 저 편 누군가도 나와 똑같이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낙타 몰이 소년의 그을린 얼굴에도, 땡볕에서 온종일 주스를 내리는 아낙의 깊은 주름에도, 하나라도 더 팔겠다고 "언니, 오빠"를 외쳐대는 상점 아저씨의 목울대에도......





이번 여행에서 나는 더 살아볼 이유를 갖게 되었다. 낯선 곳에서 느낀 깨달음은 신선했다. 그리스와 터키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도 덤으로 챙겼다. 오다가다 마주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지만 서툰 영어 실력에 반벙어리처럼 더듬거려야 했다. 좀 더 영어를 잘한다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여행의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출하듯이 뛰쳐나간 그리스와 터키에서 나는 제2의 삶의 이유를 품고 돌아왔다. 아직 내가 도전하고 공부해봐야 할 것들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들이 커서 내 품을 벗어나고, 남편이 자신의 생활에 빠져 있고, 나이 든 얼굴에 주름이 친구처럼 찾아와도 슬퍼하지 않고 다시 청춘의 벌떡거리는 심장으로 힘차게 뛸 이유가 생겼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비로소 정서적인 독립을 시작했다. 그전까지 가족과, 일, 사회적 관념에 갇혀 내게 주어진 자리가 요구하는 임무에만 충실했다면 이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치받쳤다.

그래서 나이 50에 다시 세는 첫 돌이 되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으로부터 첫 번째 삶을 부여받았다면, 나는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부여하는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수많은 생각에 갇혀 그대로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었다면 내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싶다.  





여행이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제각기 소중한 의미일 것이다. 나에게 여행은 더 살아볼 이유였다. 그만큼 나는 절박한 50을 맞았고 휘청이고 있었다. 30과 40을 오히려 기대하고 기다렸던 것과 달리 50의 무게는 나를 침잠시키기에 충분한 괴물 같은 것이었다.





삶이 때로는 참 어이없다. 태산도 떠다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만만함이 어느 날 문득 바늘 끝에 찔린 상처에도 허물어진다. 언제나 푸른 청춘일 것 같던 기고만장한 젊음은 성냥불처럼 사그라들고, 세월에 밀쳐둔 먼지 묻은 보퉁이 같은 중년의 나이테가 참으로 어이없었다.




그랬던 중년이 그래도 좋은 이유를 알았다. 혼돈의 20대를 지나 정신없이 생활에 떠밀려 살았던 3, 40대와 달리 50이 되니 나를 돌아볼 여유를 위로금처럼 쥐어준다. 그 여유를 무력하게 흘려보낸다면 아무 가치 없는 무료함이 될 수 있겠지만 나는 다시 꿈을 꾼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찾아 나를 살아간다. 늘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있던 나에게 정당한 가치와 몫을 스스로 매긴다.





늙는 것이 그저 작아지고 쪼그라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청춘의 풋풋함과 열기가 그 자체로 아름답다면 멋지게 늙어가는 것에는 젊은 그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곰삭은 풍미도 있다. 그래서 늙어가면서 정신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

단 한 번의 여행이 나의 인생을 눈에 띄게 확 뒤바꿔 놓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지만 그 사소한 것 하나가 나의 생각을 흔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삶의 좌표를 달리 보게 한 것은 사실이다.





난데없이 회오리바람처럼 불어닥친 인생의 허무함이 그래도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다며 부여잡은 지푸라기가 여행이다.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마다 드는 팽팽한 긴장은 성취와 도전으로 이어지고,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잃었던 친구를 되찾은 것 같이 기쁘다.





나는 늙어간다. 그러나 그것에 서러워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시간이 지나야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가치에 눈을 뜨고 싶다.





최선을 다 한 기꺼운 홀가분함으로 내 인생에 당당하고 싶다. 늙어가는 나를 자랑스러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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