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여기 내가 서 있는 이유?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성당에서
2019. 10. 08. 카즈베기 사메바 성당
트빌리시에서 스테판츠민다로 들어오자마자 숙소에 겨우 짐만 내려놓고 곧장 사메바 성당을 가기로 했다. 조지아에 머무는 동안 날씨 운이 좋아서 이번에도 멋진 날씨를 기대했었는데 카즈베기에서는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하늘 가득 잔뜩 낀 잿빛 구름이 울까 말까 하는 어린 아이처럼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를 일이다.
트빌리시에서 오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성당을 가려고 할 즈음부터는 억지로 빗방울이 멈추었다. 수틀리면 금방이라도 마음을 돌려먹고 세차게 비를 흩뿌릴 태세지만 참고 있어 주니 그나마 감지덕지다.
야트막한 경사 진 곳에 있는 숙소에서 버스 터미널까지 내려가는 동안 택시기사의 끝없는 호객행위에 시달려야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유달리 호객행위가 심한 것 같다. 지나칠 정도로 퍼부어대는 호객행위가 짜증 날 정도였지만 막상 마을을 둘러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여행자들이 트레킹을 위해 잠시 머무는 작은 마을이 스테판츠민다이다. 경제활동을 위한 특별한 산업시설이 있는 곳도 아니고, 더군다나 성수기를 비껴 난 가을에 이 곳을 찾는 여행객도 적다 보니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는 기사들의 치열한 경쟁은 너무도 당연한 생활일 것이다.
많은 기사들 중 나에게 두 번 제안을 한 기사를 택했다. 한 번과 두 번의 차이, 남들보다 한 번 더 하는 시도의 결정적 의미를 실감하며 턱수염이 수북해서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차에 올랐다.
차는 낡았지만 연신 뱃고동 같은 힘찬 소리를 뿜어대며 사메바 성당을 향해 달렸다. 어쩌다 오고 가는 차 한 두 대와 마주칠 뿐 마을은 마치 무인도처럼 조용하다. 성당 아래에는 그래도 먼저 도착한 차들과 사람들이 보인다. 기사는 이 곳에 주차해놓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 충분히 둘러보고 오라고 한다.
맨 산꼭대기 정상에서 안개에 갇힌 사메바 성당은 고혹적인 자태로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홀린 듯 사메바 성당을 향해 올라갔다.
잔뜩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옷을 몇 겹을 껴입었는데도 막상 위에 올라가니 제법 춥다. 사방은 잿빛 안개로 온통 희뿌였지만 서서히 웅장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초록으로 뒤덮인 여름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송두리째 사람들에게 품을 내어주었을 이 자리에서, 태생을 숨기지 못하는 자연의 본성 앞에 나는 짤막한 감탄사도 내지르지 못하고 얼어 붙었다.
마을로부터 까마득한 이 성당까지 그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사뭇 궁금한 일이다. 요즘도 걸어서 왕복 네 시간이 족히 걸리는 쉽지 않은 길인데, 옛날 조지아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깊은 신앙심으로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그 당시 내가 조지아 사람이었다면 필히 단 한 번도 이 곳에 오르지 못한 땡땡이 신자였을 것이다.
성당을 오르면서 잠시 뒤돌아서 보았다. 차를 타고 올라 온 저 길마저도 굽이굽이 까마득하다. 차로 와도 아득하기만 한 길을 그 옛날에는 어떻게 오고 갔는지.... 그들의 깊은 신앙심이 눈 앞의 저 산더미만 했나 보다. 성당은 누구도 쉽게 범접하지 못하는 하늘 아래, 구름 위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귀히 여기지 않았을까?
조지아 성당은 참으로 소박하다. 화려한 장식이나 과한 꾸밈이라곤 전혀 없다. 그동안 유럽에서 보았던 거대한 규모나 화려함으로 사람을 압도하던 유수한 성당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담벼락에 기대고 앉아 속 끓인 이야기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고, 못 생긴 감자 한 알도 나의 허기 앞에 당당하게 꺼내 베어 물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아무 돌무더기 주섬주섬 주워 모아 붙여 다듬어 놓은 것처럼 수수하다. 창문도 손바닥만 한 쪽창 정도일 뿐, 그 어디에도 인공적으로 멋을 내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운치 있어 보이는 것을 노린 고도의 전략(?)인가? 마치 조지아 사람들처럼 순박하다. 교인이 아닌 나조차 왠지 모를 경건함이 느껴진다. 그런 마음은 화려한 외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안개에 가리고, 바람이 불어도 성당 주변의 절경은 찾는 이들의 발을 한동안 멈추게 했다. 추우면 조금 더 웅크리고, 깃을 곧추세우면서도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성수기인 여름에 왔더라면 북새통인 가운데 지금의 이 정취를 느긋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칠레 파타고니아처럼 오히려 비수기 때 온 것이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성당이 작아서 안을 둘러보는데도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곳곳에 조지아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의 흔적을 느끼며 천천히 내려왔다.
성당을 오르고, 다시 그곳을 내려오면서 생각에 잠겨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저마다 존재해야 하는 이유 하나쯤 모질게 품고 있지 않을까?
떠내려 보낼듯 한 장대비가 퍼붓고, 세찬 바람이 아무리 흔들어대도 제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 하나로 사메바 성당이 오랜 세월 저 자리에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처럼.....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 나는 왜 있는지 주머니에 넣은 시린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그 이유를 더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