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백화점에 나갔다. 나이가 들수록 두 손이 자유로운 백팩에 점점 손이 자주 가게 된다. 탄탄한 스타일의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새로 나온 모노그램 백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혼잡한 게 싫어서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백화점을 나가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큰 맘을 먹고 시내에 나갔다.
오랜 기간 코로나로 인한 보상 심리로 해외 명품 코너에 길게 줄이 늘어선다는 뉴스와 달리 늦은 오후라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그다지 혼잡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려고 작정한 모델이 있었으니 이것저것 둘러볼 필요도 없이 재고를 확인하고 결제하고 끝내는데 10분이면 충분했다.
20대로 보이는 체구가 자그마한 매장 직원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일을 처리했다. 때마침 사은 상품권 행사가 있어 현장에서 처리하는 단계가 조금 더 있었다. 작은 손으로 이리저리 전산 기기 작업으로 바삐 움직이는 그녀의 손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아유! 손이 빠르네요"
"호호! 많이 하는 일인데요 뭐"
손은 바삐 움직이면서도 입가에는 연신 미소를 잃지 않으며 대답을 한다. 때로는 명품 코너에서 흔히 보는 지나친 친절이 오히려 불편했었는데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아쉽게도 매장에 재고가 없어 물품이 도착하는 대로 연락을 주기로 하고, 나간 김에 이따금 사용하는 교통카드용 지갑이 필요해서 추가로 하나를 더 사서 돌아왔다.
가방이 도착하는데 1주일가량 걸릴 거라더니 3일째 되는 날 연락이 왔다. 일요일에 매장으로 나가겠다고 했는데, 마침 토요일 오후에 갑자기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담당 직원은 이것저것 매어보고 있는 다른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잠시 후 결제를 하려나 싶어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온몸으로 애쓰는 담당 직원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매장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결정이 났을까 해서 돌아보니 그 손님은 여전히 다른 제품을 매어보고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려보았지만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담당 직원에게 아는 척을 했다.
"가방 찾으러 왔어요"
"네. 고객님. 일찍 오셨네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지금 고객 응대 중이라서요"
"그래요"
순간, 우연한 기회에 제목에 이끌려 재미있게 보았던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의 여자 주인공인 명품 매장 판매원 왕만니가 갑자기 생각났다. 내가 보기에는 금방 성사될 것 같지 않은데 그 직원은 곧 결정 날 것 같아 보였는지 나를 잠시 뒤로 미루고 다른 고객에게 집중하고자 했다. 순간 그녀의 투명한 속내가 전자저울의 선명한 숫자처럼 화라락 드러난다. 저울 위에는 이미 판매한 손님과 판매할 손님의 차이가 뻔히 느껴져 빙긋 웃으며 그러라고 했다.
그 후로도 구매 결정은 쉽게 나지 않았고 그녀는 그 여성 고객의 반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소파에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으로 응원을 했다. 그런데도 고객은 이것저것 가격만 물어보고 좀처럼 결정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그녀는 다른 직원을 시켜 나를 응대하게 했다. 가방만 받아 가면 되니 직원이 누가 되었든 나는 상관이 없었다.
"고객님, 응대를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안녕히 가세요"
"그래요"
간단히 현품 확인을 하고 5분 만에 매장을 막 나서려는데 어디선가 그녀가 쏜살같이 달려와 인사를 한다. 어느 가방을 살지 결정하지 못한 그 여성 고객처럼, 그녀도 이쪽, 저쪽 다 허술히(?) 할 수 없었는지 황급히 다가와 굳이 마지막 눈도장을 찍는다. 깊숙이 허리를 굽힌 그녀의 인사가 잊고 있었던 불편한 친절의 아쉬움을 긁어모은다.
뒤를 돌아보니 거울 앞에서 연신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그 고객은 아직도 결정을 하지 못한 듯했다. 되돌아가는 매장 직원의 가녀린 등 뒤로 분분한 마음이 읽힌다. 우리의 몸짓 하나, 하나에도 다시 주워 담지 못하는 강렬한 언어가 베여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 손님이 꼭 그 가방을 사서 돌아가리를 바라며 백화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