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by 파란 해밀



주말 동안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을 다시 보았다. 여행이 그리웠던 것 같다. 세 남자가 가는 곳마다 그곳에 머물렀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언제나 많은 여행객들로 활기찼던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과 수많은 골목이 또렷했다. 더없이 맑고 깨끗한 친체로의 하늘은 다시 생각해도 그보다 더 파란 하늘을 떠올릴 수 없고, 마추픽추의 감격과 아구아스깔리안떼의 세찬 물소리는 지금도 그곳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와카치나 사막에 길게 몸을 누인 석양은 조용히 나를 돌아보게 했고, 황량함마저 신비했던 나스카의 기억은 모래 언덕에 새겨진 그 그림처럼 선명하다. 마지막 일정을 보냈던 리마는 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어두운 긴장까지 또렷하다.



© rennygam, 출처 Unsplash



작년 초, 조금씩 번지는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말레이시아와 멕시코 여행을 모두 취소하면서도 이내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언제 갈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다. 속절없이 1년 반이 지나는 동안 지난 여행 프로그램을 들추며 되새김질로 그 갈증을 달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계획했던 대로 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 근간에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누가 지금을 상상이나 했을까? 봄, 여름이 가고, 가을, 겨울이 오면, 단 한 번도 어기지 않고 계절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일상의 기회를 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 예전의 일상을 갖고 싶다고 가질 수도 없고, 사고 싶다고 살 수도 없다. 우리가 누렸던 당연했던 그 사소한 것들이 잃어 보고 나니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 JillWellington, 출처 Pixabay



목젖이 보이도록 웃는 것도, 오랜만에 만나서 나누던 뜨거운 악수도, 닿을 듯 마주 앉아 밤새 이야기하는 것도 지금은 모두 금기사항이 되었다. 코로나를 겪다 보니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것으로 착각했을 뿐, 보잘것 없는 것조차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코로나를 겪고서야 이전의 일상이 더없이 고마운 것을 깨달은 것처럼,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 않게, 너무 늦어서 아쉬워하지 않게, 양팔을 뻗어 그 안에 와 닿는 가까운 것들부터 돌아보아야겠다. 코로나가 또다시 닥치지 않더라도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들과 소소한 것들에 빨간 포스트잇을 붙여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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