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부르는 이름

by 파란 해밀


"새댁~~~. 새댁이~~~~"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호칭이기도 하고, 큰 녀석이 초등학생이었으니 당연히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닐 거라는 확신과 함께 무엇보다 "새댁"이라는 호칭이 어색해서 선뜻 반응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부르는 소리가 하도 간곡하고 자꾸 부르길래 대체 누구에게 그러나 싶어 돌아보니 자주 들르는 노점에서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창피하게 왜 새댁이라고 부르는 거야?'


학교 주임 선생님에게 불려 가는 학생처럼 나는 그 어색한 호출에 어정쩡한 표정으로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나를 부른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어색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주변에 시장 나온 사람들이 다들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 누구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혼자 속으로만 어쩔 줄 몰라했던 것이다.


그 후로도 시장에 가면 한두 번 "새댁"이라는 소리를 더 들었던 것 같다. 들을 때마다 진저리를 쳤다. 그때는 왜 그리도 그 소리가 싫던지...... 아마도 결혼하자마자 불러야 하는 아주버님, 형님, 동서 같은 관계의 호칭처럼 선뜻 입에 붙지 않고, 귀에 감기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photo-1471193945509-9ad0617afabf.jpg © peterwendt, 출처 Unsplash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새댁"이라는 단어가 자꾸 입에서 맴돌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불쑥 튀어나오는 콧노래처럼 그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혼자 "새댁~~~~~" 하고 불러보았다. 수 십 년 만에 불러본 "새댁"이라는 호칭이 더없이 정겹게 느껴졌다. 그토록 몸서리치며 싫어했던 새댁이 마치 아련한 추억처럼 다가왔다.

곰곰 생각해 보니 이젠 나를 새댁이라 불러줄 사람도 없다. 그렇게 불릴 나이도 아니니 꿈결에서나 들을 수 있으려나...... 사람 마음이 참 얄궂다. 그렇게 불리어도 되는 나이에는 칠색팔색을 했는데 그때를 훌쩍 떠나오니 그 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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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다"라는 말이 번쩍 정신을 들게 한다. 어쩌면 지금도 나는 새댁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육십을 코앞에 둔 이 나이를 낯설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지나간 사십도, 오십도 팔팔한 청춘이었는데, 10년 뒤, 20년 뒤에 돌아보면 오래 전의 새댁처럼 다시금 이 나이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을까?

내게 찾아온 것을 밀어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훗날, 시간에 떠밀려 되돌아보면 다시 되풀이할 수 없는 후회만 덩그러니 남을 것 같아서다. 새댁일 때 잔뜩 새댁이고, 육십일 때 잔뜩 육십이어야 할 것 같다. 매 순간 우리 모두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소중한 기회 위에 머물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뼛속 깊이 아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꼬?

그래도 오늘은 왠지 자꾸 그 새댁이 그리워진다.
'새댁, 새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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