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하나를 뺐다. 그동안 드문드문 신경이 쓰였던 이다. 치과를 신바람 나서 가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 역시 치과에 갈 때만큼은 쓸데없이 심사숙고(?)를 한다. 이번에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30여 년 전에 했던 후회가 떠올라 하던 갈등을 멈추었다.
둘째를 갓 임신했을 때다. 왼쪽 어금니 하나가 살짝 아프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갔던 치과의 기억은 커서도 치과 가는 것을 꺼리게 했다. 통증도 심하지 않아 참을만했고, 임신 중에 치과 치료는 삼가야 한다는 가짜 정보를 믿고는 내 멋대로 결론을 지어 가지 않을 핑계를 만들었다.
열 달이 지나 둘째를 낳고 다시 출근할 즈음, 치통은 더 이상 참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제야 치과를 갔더니 충치가 심해서 간단히 치료할 수 없고 이를 갈아내고 덮어 씌워야 했다. 결국엔 이렇게 와야 할 것을 차라리 처음에 왔더라면 간단히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더 많은 시간, 돈, 두려움과 절반의 이를 떼어내고서야 충치를 마무리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야 치과 가는 일만큼은 미뤄봐야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쉽게 정이 들지 않는 것이 치과다. 이번에도 간간이 약간 기분 나쁠 정도로 거슬리기는 했지만 심하게 아픈 게 아니라 좀 지켜보았다. 음식을 씹을 때 뭔가 힘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 있어 반대쪽만 사용했는데 그것도 오래 두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번에 가지 않으면 30년 전에 했던 후회를 똑같이 할 것 같아서였다.
검사 결과 뿌리 쪽에 뼈가 녹아서 그 부위에 인공뼈를 채워 넣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냥 두면 점점 더 녹아내려 나중에는 치료가 지금보다 많이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동안 씹을 때마다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이 받쳐줄 뼈가 제대로 지탱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고 하니 상황이 이해가 갔다. 치과 치료를 늦춰서 득 볼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임플란트를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염증 치료 약을 먹고 치과를 갔다.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공포와 맞서 가며 어금니를 뽑았다. 단단히 박혀 뽑히지 않겠다는 어금니와 기어이 뽑고 말겠다는 의사, 뭔가 꼭 쥘 게 없을까? 허공을 더듬으며 버티던 나와 씨름 끝에, 깨고, 부수며 몇 차례의 우지끈거리는 소리와 함께 의사는 개선장군처럼 연장(?)을 내려놓았다.
그 자리에 목화솜 이불 같은 거즈 한 뭉텅이를 찔러 넣어준다. 마취 덕인지 틀어막아 놓은 거즈 덕인지 처치대에 나와 있는 이를 보지 못했으면 이가 뽑혀 나갔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거즈를 갈아주며 틀어막고 있다가 초저녁이 되어서야 살짝 빼보았다. 대놓고 거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금니가 빠진 근처를 혀로 살짝 눌러보았다. 빠진 이보다 훨씬 큰 구멍 하나가 느껴진다.
고운 함박웃음을 지을 때면 치아가 있는 자리보다 없는 빈자리가 더 많던 어느 노할머니, 틀니를 빼서 칫솔로 씻으시던 시어머니, 단아한 하숙집 아주머니가 수돗가에 놓아둔 틀니를 보고 같이 교육을 받던 동기와 혼비백산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부서진다.
살짝 때운 곳, 덮어 씌운 이는 있었지만 통째로 빼내고 쇠말뚝 같은 임플란트를 한다는 것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혀끝에 느껴지는 텅 빈자리가 자꾸 휑하게 느껴져서일까? 손톱보다 작은 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와 마음이 옹송거린다. 첫돌이 안 되는 아기처럼 서너 개 남짓 남은 노인네의 외로운 앞니가 나를 보고 웃는 것 같다. 찌그러진 냄비 하나라도 내놓아야 엿 한 조각 바꿔 먹듯, 늙어가는데도 어금니 하나쯤은 내놓아야 하나 보다.
나는 오늘 이렇게 또 늙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