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쓰던 우양산이 드디어 완전히 박살이 났다. 얼마 전, 베트남 달랏에 갔을 때 젖은 우산을 실내에서 말리느라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데, 너무 큰 타월로 닦아서인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우산 살 하나가 더 부러졌다. 이미 오래전에 살이 부러졌지만 사용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어 그러고도 한동안 잘 사용하고 있었다. 요즘은 주변에 우산을 고치는 곳도 없고, 구입한 백화점 매장에 가져가면 고쳐준다고는 하지만 사용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 보니 그냥저냥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살 하나가 더 부러지면서 더 이상 우산이 펴지지도 않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냐트랑에서 돌아오는 짐을 싸면서 그 우산을 버리기로 했다. 나는 그만큼 짐 하나가 줄어드니 좋고, 베트남은 우산을 고치는 곳도 더러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누군가 재활용을 할 수 있으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고 오기로 했다.
대부분의 짐 정리를 한 후에 탁자 한 곳에 놓여 있는 우양산에 눈이 갔다. 언젠가 페낭에서 버리고 온 신발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신어서 너무 낡고, 떨어져 페낭에 버리고 온 후 한동안 마음이 쓰였다. 그 신발도, 우양산도 돌아보니 내가 여행할 때마다 갖고 다녔던 필수품이었다. 정확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같이 한 지 10년은 된 것들이다.
페낭에 버리고 온 신발
가만히 쳐다보던 우양산을 가방에 다시 꾸려 넣었다. 페낭에 두고 온 신발처럼 이번에도 두고 가면 돌아가서 또 후회할 것 같았다. 여행할 때마다 요긴하게 신었던 신발이었다. 오랫동안 걸어도 발이 편해 이 신발만 갖고 나갔다. 물을 건너고, 사막을 함께 걸었다. 그런데 낡고, 떨어졌다고 객지에 훌렁 버리고 온 것이 마치 병이 들었다고 정들었던 반려견을 돌아오지 못하는 먼 곳에 버리고 온 것처럼 마음에 걸렸다. 그것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미루었던 수선을 한 번 해보고 그조차 되지 않으면 그때 버리기로 했다. 살이 부러진 후로 몇 번이나 새 우양산을 사려고 했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 사지 못했다. 과한 꽃무늬나 자수를 빼고, 체크 패턴을 제하고 나니 딱히 사고 싶은 것이 없어 부러진 우양산을 몇 년 동안 쓰고 있었다. 더위 한 철이나, 여행 갈 때만 우산으로 사용하고 자주 쓰는 편이 아니다 보니 그래도 근근이 쓸 수 있었다.
그 우산으로 세계 곳곳을 함께 다녔다. 동남아, 유럽, 남미 여러 나라를 혼자 가는 여행에서 동무처럼 같이 했다. 누군가 다른 여행지기가 있었다면 이런 마음이 덜 들었을까? 나 혼자 걷는 길에 묵묵히 햇빛을 가려주고, 비를 막아주던 그 우산대에 나도 몰래 고단한 내 마음을 뉘어서일까?
페루 와카치나 사막에서
유독 내 양산을 좋아했던 크로아티아 아가씨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백화점 매장에 수선을 맡겼다.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수선비가 6만 5백 원이라고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선해 달라고 했다. 2012년도 제품이라 부속이 없어 부러진 살 일부만 교체가 되지 않고 전체를 갈아야 한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10년 전에 15만 원을 주고 산 것인데 6만 원을 주고 수선을 하면 어쩌면 밑지는 장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러라고 한 것은 6만 원을 주고도 다시 살 수 없는 우양산의 패턴도 그렇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함께 공유했던 일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 것이다.
낡은 신발을 버리고 새로 산 신발은 아직도 신을 때마다 어색하다. 수선을 맡긴 동안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집 안에 처박혀 있던 양산을 대신 펼칠 때마다 하루빨리 말끔하게 고쳐졌을 우양산을 보고 싶었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만날 우양산에 가슴이 설렌다. 그것을 펼치면 곳곳에 묻어 있을 나의 이야기들을 손으로 꼼꼼하게 훑어볼까 한다. 10년 동안 켜켜이 쌓여 곰삭은 그 이야기를 활짝 펼쳐볼까 한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쯤은 거뜬히 함께 더 다녀볼까 한다. 20년 지기가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