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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l 13. 2023

징검다리




20대 초반,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혼돈의 청춘이 버거워서였다. 지푸라기에라도 기대 볼 심정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정 스님의 "무 소유"가 손에 쥐어졌다. 특별히 무엇을 기대하고 읽은 것은 아니었는데 읽고 나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무 소유 자체의 의미는 알겠으나 그래서 행복하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가지려 하고, 더 많은 것을 쟁취하려 하는데 난데없이 머리를 때리는 무 소유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전쟁 같은 생존의 일상과 많이 동떨어진 고즈넉한 산사의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인 것 같아서 20대의 나에겐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 kronemberger, 출처 Unsplash




그랬던 스무 살의 청춘이 반백 년 중턱에 이르던 어느 날, 문득 멀리 밀쳐두었던 무 소유가 다시 한번 큰 진동을 울렸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줄 알았던 그것은 이미 내 주변에 있었다. 자꾸 늘어나는 베란다의 화분 때문에 지나다니는 통로가 좁아지고, 철마다 사들이는 옷은 용암처럼 옷장 밖으로 흘러나오는데도 그동안 소유의 무거움을 알지 못하고 지냈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속성에서 그랬을 것이다. 현실과 맞지 않는 궤변이라고 했던 무 소유의 홀가분한 기꺼움을 스무 살, 그 팔팔하던 때에 어찌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을 알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소유와 무 소유에 뒤엉켜 살았다.




© visaxslr, 출처 Unsplash




방 한가득 꽂혀 있던 책을 덜어내고, 창고에 빼곡하던 그림을 덜어내던 날, 무언가 내 속에서 숭덩 빠져나간 것 같은 허기를 느꼈다. 그럼에도 그 빈자리에 잦아드는 새 털 같은 가벼움은 나를 농락하는 무소유의 희열 같은 것이었다. 소유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음으로 시도한 날이기도 했다.

스무 살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무 소유의 행복이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사는 동안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생각이 커지고, 깊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 둘..... 생각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었던 것 같다.








이 편에서 본 것이 다리를 옮겨 디딜 때마다 달리 보이고, 다른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고, 새로운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무슨 생각이 바뀌었는지 잠시 다리 위에 서서 뒤돌아 보니 스무 살 청춘에는 혼란스럽기만 했던 소유와 무 소유의 경계가 비 온 뒤의 하늘처럼 말갛다.

나이가 드는 동안 그것과 함께 생각의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부질없는 것들은 돌다리 사이로 흘려보내고,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길 소중한 몇 개만 추려서 더 많은 나이로 빠르게 빠르게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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