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페루의 시작, 아레키파!

by 파란 해밀


2017. 04. 26. 페루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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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는 걸까? 내 나이를 내어주고 조금씩 시간의 여유를 얻었다. 젊어서는 사느라 엄두도 못 냈는데 한 번, 두 번 여행을 다니다 보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페루가 간절해졌다.


"너 페루 안 갈래?"
"페루? 한 번 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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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입사 동기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별 기대 없이 툭 던졌는데 생각지도 않게 그녀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넙죽 대답을 한다.

나중에야 알고 보니 동기는 남편과 주말부부 중이었고, 아이들은 군복부와 해외근무로 나가 있어서 몸을 빼기 수월했던 시기였다. 그렇게 페루 여행은 생각지도 않게 갑자기 성사되었다. 자유여행 경험은 1도 없는 동기의 생사(?)에 대한 막중한 책임까지 배낭에 한가득 넣고 겁도 없이 둘이서 페루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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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아레키파로 향했다. 페루의 일정을 아레키파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흔히 고산병 적응을 위해 서서히 고도를 높여 이동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곧바로 고도 3,500의 콜카 캐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이 곳만 적응을 하면 그다음부터는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레키파 상공에서 난생처음으로 바라본 남미는 색깔부터 달랐다. 화려한 원색의 건물이 가까워질수록 내 가슴은 마구 뛰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내내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나를 흥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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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아르마스 광장 바로 앞에 있어서 머무는 동안 여러모로 편리했다. 대충 짐을 정리해 놓고 광장으로 나왔다. 형형색색의 페루 의상을 입고 지나는 현지인을 신기한 듯 바라보고 '내가 페루에 오긴 왔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동안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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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아르마스 광장 주위를 둘러보는 것으로 페루 여행을 시작했다. 광장을 끼고 여행사, 슈퍼, 식당, 전시관 등 다양한 시설들이 모여 있다. 선택하고 말고도 없이 닥치는 대로 훑으며 돌아다녔다.

가게에는 페루의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색색의 편물을 팔고 있었다. 다양한 무늬와 색상으로 만들어진 의류와 소품인데 품질도 상당히 좋다. 보는 사람 누구나 혹하게 만든다. 가격은 꽤 비싼 편이지만 색의 조화와 좋은 솜씨로 만든 것들을 구경만 해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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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목적지도 없이 길을 따리 걸었다.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모두 신기하다. 광장을 조금 벗어나 올라가니 수도원이 나온다. 성 카탈리나 수도원이다. 정말 수도원이 맞나? 할 정도로 건물의 색상이 화려하다. 수도원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나와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서 콜카 캐년 투어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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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숙소로 가이드가 픽업을 왔다.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에 올랐지만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이라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아레키파에서 콜카 캐년을 가는 길은 쉽지 않다. 꼬불꼬불한 길을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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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작은 마을에 들러 미리 준비해 놓은 간단한 아침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서서히 어둠이 옅어지면서 주위를 돌아볼 수 있을 즈음 콜카 캐년 콘도르 전망대에 도착했다. 약간 어지럽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것에 비해 걸어 다닐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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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콘도르를 보기 위해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다. 암만 기다려도 녀석은 보여줄 생각이 없는지 사람들의 간절함 따위는 아량곳 하지 않고 감감무소식이다.


이 높은 정상에도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있다.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면 그 어떤 곳도 불사하는 상인들의 의지도 콜카 캐년만큼이나 대단하다. 혹시나 모를 고산병에 대비해서 여기서 코카잎을 샀는데 그다지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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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 도착한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콘도르에만 있는 것 같다. 보이지도 않는 녀석을 찾기 위해 다들 빈 허공, 계곡 구석구석을 눈으로, 카메라로 뒤져 금방이라도 콘도르를 잡아 올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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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아래로는 비스듬하게 경사진 언덕이 있다. 콘도르가 올 때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언덕을 내려오던 동기는 콜카 캐년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힘들어하더니 결국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리마 공항에서 고산병 약을 샀지만 아레키파에 있는 동안 약을 안 먹고도 괜찮아서 약을 안 먹고 그냥 왔더니 콜카 캐년은 아레키파 시내에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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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구토를 하며 힘들어하는 동기를 본 현지인이 우리를 정상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코카잎과 따뜻한 차를 내어준다. 금세 낫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마음에 차츰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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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르는 없지만 콘도르에게만 어울리는 험준한 계곡이 우뚝 솟아 있다. 하늘을 다 가리려고 했던 걸까? 땅 속으로 끝없이 파고들려고 했던 걸까? 계곡은 깊이와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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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다니며 한참 동안 녀석을 기다렸다. 못 보고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즈음 콘도르 한 마리가 계곡으로 날아들었다. 그 녀석을 시작으로 연이어 몇 마리가 나타난다.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콘도르의 비행이 웅장한 계곡과 어울리는 멋진 한 판의 콜라보 공연 같다. 한동안 녀석들의 팬터마임 같은 퍼포먼스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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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 캐년 투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전망 좋은 스팟 두 군데에 차를 세워준다. 계곡은 깊고 웅장해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압도당하는 것 같다. 굽이굽이 계곡을 어루만지며 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삶의 계곡을 깎으며 흐르려 했던 나를 지그시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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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계곡을 휘감고 도는 저 물처럼 저렇게 흐르지 못했는지......'
한동안 물을 타고 내 생각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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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소는 사람들이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새벽부터 나와 하루 종일 돌아다닌지라 목욕을 하면 개운할 수도 있겠지만 수영복까지 빌려가며 하기에는 번잡하고 꺼려지는 일이라 그냥 주변을 조용히 걸어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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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몇몇 관광객들은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몸을 물에 담근다. 저들의 좋아하는 표정만 봐도 내가 목욕한 것 같다.

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들른 화산 분화구에서 나는 거의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고산병의 진수를 맛보았다. 너무 어지러워 눈도 뜰 수 없고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이 들어 두세 걸음 나갔다가 눈을 감은 채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어 손으로 더듬더듬 휘저으며 겨우 차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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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가 건네주는 알코올을 연신 코에 갖다 대어 보았지만 그다지 도움은 되지 못했다. 결국 차 안에서 심하게 멀미까지 하고 고도가 낮아지기만을 기다렸다. 고도가 낮아지자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속도 편안해지고 정신이 똘똘해진다.


되돌아온 아레키파는 떠났던 새벽처럼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다. 아르마스 광장은 하나, 둘 불을 밝히고 이국에서 맞는 두 번째 밤의 정취는 훌렁 다 비워낸 속을 찌르르하게 울리는 싸한 소주처럼 조금씩 조금씩 내 안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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