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푸노의 끄트머리

by 파란 해밀


2017. 04. 27. 푸노 남부섬 투어



불편했던 우로스 섬을 떠나 푸노의 남부에 있는 섬 투어를 나섰다.


'섬 투어가 뭐 그렇고 그렇겠지'


기대 없이 선착장에 내렸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지 선착장에서 섬으로 오르는 길은 시멘트로 반듯하게 만들어놓았다.



조금 더 오르자 좁은 흙길이 나온다. 천천히 걸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날씨는 이보다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만큼 맑고 깨끗하다. 조금씩 올라가자 선착장 쪽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던 순박한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햇살은 따사롭고,

하늘은 티 없이 푸르고,

툭! 툭!

새순은 팝콘처럼 초록을 틔우고,

바람은 소리 없이 이들을 간지럽힌다.



어느새 동네 꼬마가 맨발로 달려와 반겨(?) 준다. 작은북을 들고 나온 사내아이도 맨발이긴 마찬가지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는 수줍음과 호기심이 가득하다. 내 가슴에도 녀석만큼이나 섬에 대한 호기심이 그득해진다.



섬이 호수를 닮았는지, 호수가 섬을 닮았는지 둘은 아무도 없는 세상에 서로 기대고 마주앉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뒤돌아본 선착장은 한바탕 사람을 쏟아내고는 한숨을 돌리고 있다. 아마도 오늘 일 중에 제일 큰 일이었을 것이다.



저 멀리 드문 드문 집들이 몇 채 보인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섬에 사람이 사는 것도 신기하고, 어찌 사는 지도 궁금하다. 매일 아담과 이브처럼 "나 잡아봐~~~ 라"만 하면서 살까? 밭일을 하지 않은 남편이 술만 마시고 들어와서 대판 싸우는 소리가 가끔은 야트막한 담 너머 삐져나오기도 할까?



가이드는 집이 모여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에서 동네 아낙들은 천 짜는 모습을 시연해 보인다. 저만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숱하게 손이 오고 갔을까?



그 옆으로 앉은 예쁜 모자를 쓴 아저씨가 무심하게 뜨개질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뜨개질을 잘하는 남자를 보는 것이 드문 일인데 이곳에는 다반사인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야기를 하다가, 먼 데를 바라보다가, 그러면서도 곡예하듯 움직이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뜨개질을 한다. 아마도 이 곳 남자들이 뜨개질하는 것은 여자들이 천을 짜는 것처럼 늘 하는 일인 것 같다.



남미니까 저 원색의 모자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색 배색도 짜는 사람 마음대로려니 했는데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성별과 결혼 여부에 따라 색상과 디자인을 달리한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과 시연이 끝나자 소박한 악단이 등장한다. 조용한 섬에 악기 소리가 풍선처럼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



남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아낙들이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고, 막바지에는 우리도 그들과 같이 춤을 추었다. 한바탕 펼쳐진 야외공연(?)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근처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보기와는 달리 집에는 수세식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고, 비교적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약간 비좁긴 해도 처음 만난 여행객들과 다닥다닥 테이블에 붙어 앉아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소박하지만 맛있는 식사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어딜 가나 주식으로 주로 나오는 페루의 못생긴 빵이 내 입맛에는 아주 딱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가보지 않은 섬의 반대쪽을 걸었다. 호수는 바다처럼 성내는 일이 없어서 일 년 내내 저렇게 조용하기만 할까? 부는 바람에 슬쩍 흔들리고 말 뿐 호수는 크게 일렁이지 않는다. 섬과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한가롭다.



등 뒤로 호수라고 써붙여 두어야 호수인 줄 알 것 같은 티티카카 호수! 호수도 바다만큼 넓으면 바다라고 불러줘야 되지 않나? 반대편은 볼리비아에 접해 있어 호수를 두 나라가 사이좋게 나누어 쓰고 있다.



주섬주섬 돌을 이어 붙여 만든 돌문이 정겹다. 페루에 가자는 나의 꼬드김에 나를 믿고 흔쾌히 따라나서 준 동기가 새삼 고맙다.



배를 타고 돌아가기 위해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고운 모래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함께 여행 온 것 같은 어느 여행객의 등에는 푸노의 오후 햇살이 따뜻하게 내려앉아 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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