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
우로스 섬의 판화

by 파란 해밀


2017. 04. 27. 푸노에서 우로스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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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키파에서 푸노로 향했다. 차 창 밖으로 보이는 페루의 정경은 그저 한 폭의 그림이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차에 있는 오디오로 남미 음악을 들으며 남미에 있다는 것을 점점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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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미리 2층 버스 맨 앞좌석을 예약해간 터라 바깥 풍경을 즐기며 지루한 줄 모르고 갔다. 고속도로(?)라고 하는 것이 왕복 2차선이라 타고 있던 버스가 앞차를 추월할 때마다 그 아슬아슬함을 눈으로 다 지켜보아야 하는 것만 빼고는 뷰가 끝내주는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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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도심으로 접어들 때까지도 우리는 푸노가 기다리고 있는 악몽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냥 설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아레키파에서 어느 정도 고산병에 적응했다고 자신있어 했는데 아레키파 보다 고도가 더 높은 푸노는 그 차이를 여실히 실감하게 했다. 리마 공항에서 산 고산병 약을 먹었는데도 호흡곤란과 구토 증상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산소 호흡기를 사용해 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다.



숙소에서 기절한 사람처럼 널브러져 있다가 우로스 섬 투어도 그냥 호텔에 신청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증상은 여전해서 투어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이런 사정을 안 호텔 매니저가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을 사 먹으면 된다며 픽업하러 온 여행사 직원을 로비에 세워놓고 약국까지 함께 가서 약사에게 상황 설명을 대신해주었다.



미리 사둔 고산병 약과 푸노 약국에서 산 약을 바로 먹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신기하게도 심하던 구토 증상이 거짓말처럼 말끔해졌다. 그동안 다 죽어가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쌩쌩하게 살아났다.


아쉬운 건 그 약 이름을 메모해두지 않은 것이다. 남미에 올 일이 또 있겠냐 싶어 적어두지 않았는데 두고두고 아쉬운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우로스 섬 투어에 나섰다. 배를 타고 얼마 안 가 우로스 섬에 도착했다. 군락처럼 무리 지어있는데 가는 투어사마다 도착하는 지점이 달랐다.



섬을 비롯해 모든 구조물들은 토토라라고 하는 갈대로 만들어져 있다. 과연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버틸까 싶었는데 티티카카 호수에서 마치 제가 뭍이라도 되는 것처럼 굳건하게 떠있다.


자연 그대로의 연갈색 우로스 섬에서 아낙네들의 원색 의상이 유달리 눈에 띈다. 길게 땋아 내린 아낙의 머리와 화려한 의상이 페루에 온 것을 자꾸 일깨워 준다.



관광객들이 섬에 내리자마자 정해진 매뉴얼대로 일사불란하게 진행이 이루어진다. 가이드의 설명과 더불어 도우미(?)의 시범은 오래전부터 맞추어 온 퍼즐처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이어진다.



설명이 끝나고 그들의 실생활을 볼 수 있도록 집안을 공개해준다. 딱히 가리고 말고 할 정도도 없는 극한의 미니멀한 생활이다. 궁금한 마음에 보기는 하면서도 남의 집 안을 들여다본다는 게 왠지 미안해진다.



집 안에는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 있다. 그럼에도 관광객들 방문에 맞추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틀에 박힌 듯한 진행이나,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하는 그들의 열성에는 오히려 선뜻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부담스러움도 생긴다.



화려할 것 하나 없는 그들의 생활과, 입력된 명령어대로 움직이는 로봇처럼 행해지는 그들의 정해진 몸짓에서 편하게 다 안아지지 않는 불편한 양면을 나만 느꼈을까?



떠나는 우리를 위해 문 앞에서 노래를 불러준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것을 반복해야 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다만, 열심히 외우는 주문처럼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인간적이었다고 할까? 진한 색조화장처럼 덧입혀진 미소까지 얼굴에 풀장착했더라면 그들의 마지막 손인사에 아마 답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배를 타는 곳까지 우로스 섬의 아낙이 갈대로 만든 배로 데려다준다. 작은 맷돌 돌리듯 노를 젓는 게 너무 쉬워 보여서 내가 한 번 해보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노를 내어주고 그녀는 옆에 앉았다.


막상 해보니 보는 것처럼 쉽지 않다. 힘들어서 건네주려고 쳐다보니 망연히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피곤해보여 바로 건네지 못하고 몇 번을 더 저었다.


온 힘을 다해 겨우 대여섯 번 저었을까? 집 안에 아무것도 없는 미니멀한 이들의 삶이 노 대여섯 번으로 그칠 만큼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우로스 섬 투어는 썩 유쾌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쉽게 보지 못하는 특이한 곳을 둘러본 것으로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다. 단지 그곳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접어두고 싶다. 어쩌면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그들을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를 보내고 저들은 또 다른 관광객들이 오면 우리한테 했던 것과 똑같이 할 것이다. 마치 똑같이 찍어내는 판화처럼......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또 그다음 날도.....

그런 가운데 저들도 나름의 소소한 행복으로 우로스 섬에 오래오래 머물기를 바라며 그 섬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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