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1. 20.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더디 오는 것 같아도 지나간 시간은 한순간이다. 34년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은 결혼생활에서 자식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남편과 달리, 점 하나를 떼었다 붙인다고 해서 관계가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자식이다. 그래서 부모가 평생 마음을 놓지 못하는 존재가 자식일 것이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날초보 엄마가 낳은 아들이 어느새 서른셋이 되었다. 대단한 자식을 키운 것도 아니고, 특별한 교육 비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탈하게 커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고 하지만 어찌 보면 자식이 부모를 키우는 것이 아닐까? 큰아들이 서른세 살이 되었으니 아들은 33년 동안 나를 키운 셈이다. 아이들이 나를 자라게 했던 가물가물한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
큰 아들이 다섯 살 즈음이었을 때다. 녀석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연년생인 둘째와 일어나는 충돌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내 녀석들이다 보니 한순간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크고 작은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 번은 큰 녀석 때문에 화가 나서 아들의 등을 손바닥으로 몇 대 때렸다. 그런데 한 대, 두 대 횟수를 거듭할수록 팔에 힘은 더 들어가고 모터 달린 로봇처럼 그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야단칠 일인가.......?'
아이를 때리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비스듬히 앉은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울고불고 아프다고 소리 내어 울만도 한데 전혀 울지도 않고 처연한 얼굴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내 손바닥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순간 팔을 멈추었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이만큼 야단맞을 잘못을 한것도 아닌데.....'
하며 때린 것을 후회했다. 다음에는 꼭 말로 타일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생각처럼 쉽게 행해지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화에 또 한 번 아이를 때렸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며칠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자괴감이 싫었다.
사내아이 둘을 키우면서 책에서 시키는 대로 육아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순간순간 화가 치미는 상황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그렇지만 큰 녀석을 감정적으로 두 번 체벌하고 나서 찾아오는 후유증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감정이 앞서다 보니 실제로 아이가 저지른 잘못보다 더 크게 야단을 하게 되고, 아이는 과연 내가 하는 야단의 이유나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식하는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벌 뒤에 남는 감정의 찌꺼기를 삭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어느 날, 또 아이에게 야단칠 일이 생겼다. 문득 예전에 했던 후회가 떠올랐다. 여기서 내가 똑같이 감정적으로 나무라면 나는 또다시 이전과 같은 상황을 맞을 것이다. 화를 품은 채 잠시 베란다로 나갔다. 찬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큰 숨을 몇 차례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아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그러면 안 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보니 아까까지 치밀었던 화가 많이 누그러졌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다시 방으로 들어와 아들을 불러 앉혔다. 녀석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둘이 마주 보고 앉아 녀석이 한 잘못에 대해 자분자분 이야기를 해주었다. 겨우 다섯 살이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는 할까 싶었는데 녀석은 작은 머리를 끄덕이며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잘못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멈추고 싶었지만 예전에 아이와 한 약속이 있어 체벌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하게 했고, 녀석은 제 잘못에 대해 두 대의 매를 맞겠다고 했다. 회초리를 한 번도 들지 않았던 나로서 매를 드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녀석이 잘못했다고 할 때 말로만 타이르고 말 걸...... 하는 또 다른 후회가 들었다.
"딱, 딱"
그렇지만 그것도 아들과 지켜야 할 약속이라 회초리로 손바닥 두 대를 때렸다. 50센티가량 되는 가느다란 나무 막대를 통해 녀석이 느꼈을 아픔이 고스란히 내 손바닥으로 전기처럼 찌르르하고 전해졌다. 나도 같이 아팠다.
그 후로 아이를 혼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를 먼저 추슬렀다. 자칫 감정에 휘둘리다 보면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막무가내로 화를 내고 있는 이상한 여자 하나만 꽥꽥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아이가 저지른 잘못을 수습하는 데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치미는 화를 누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화내지 않은 상태가 되어야 아이의 잘못에 대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을 할 수 있고,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억울한 사정을 귀담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감정의 찌꺼기가 남지 않아서 좋았다.
그 후로 최대한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주려 하였고, 비록 어리지만 저희들 나름대로 의견도 있음을 알았다. 그렇게 초보 엄마의 노력을 알았는지 다행히 녀석들도 잘 따라주어 다시는 회초리를 들거나 소리 지르는 일이 없었다.
이 일을 통해 화는 늦게 내어도 늦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극도로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먼저 상대방의 해명을 들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오해는 떨어져 나가고 상대의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일이 있을 때는 가급적 정제된 감정과 안정된 톤으로 말을 하려고 한다.
감정적으로 치달았을 때는 정작 화난 이유는 자취를 감추고, 흥분 상태에서 마구 쏟아낸 말로 또다시 상처받고, 새로운 꼬투리가 되어 다른 화를 돋우는 악순환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 다툼이 멈추어도 정작 아무것도 해결되거나 나아지지도 않고 오히려 골이 더 깊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화는 늦게 내어도 늦지 않다"
"화를 낼 때 더 고운 말을 써라"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종종 했던 말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득달같이 화부터 내기보다는 먼저 상대의 이유를 듣고 나서 화를 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흥분된 감정이 가라앉기 마련이다. 화를 낼 때 걸러지지 않은 표현을 하다 보면 그 말의 꼬리를 물고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엉뚱한 논쟁을 하는 오류를 범하기 일쑤다.
살다 보면 화가 날 때도 있고, 화를 내야 할 때도 분명 있다. 이럴 때 불필요한 감정 소모 없이 화를 제대로 내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화를 내면서까지 상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섣부른 감정 발산이나 과격한 표현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후회도 했다가,
아쉬워도 했다가,
어떤 날은 씩씩거리기도 했다가,
낙담도 했다가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니 화내는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점 하나 더 찍는다고 남이 될 수 없는 자식을 키우다 보니 막상 그 자식이 나를 이렇게 키운 것 같다. 말이나 통할까 싶었던 다섯 살배기 아들 녀석이 오히려 나를 쑥 웃자라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