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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순 May 14. 2024

보톡스보단 외국어

중년 덕후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3. 쓰는 영어? 버는 영어!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꿈꾼 적도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전공인 독일어와 부전공인 영어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독일어로 말하자면 고교시절 제2외국어로 꽤 자주 백점을 맞곤했다. 독일어 선생님도, 독일어 자체도 재미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점수는 내 기대를 배신했다. 나, 전생에 독일인이었나. 그럴리가. 

대학입시 원서를 써야할 때 선생님께선 영문학을 빼고 안전빵으로 서양문학 중 아무 전공이나 선택하라며 은근한 압박을 주셨다.


사실, 고3시절 공부는 제쳐두고 방대한 모험을 섭렵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기에 선택과 권리를 누릴 여유도 없었다. 하물며 당시엔 학생의 진로 선택권이란 생소한 개념이었다. 점수에 맞춰 안전빵으로 한 명이라도 대학에 합격시키는 것이 선생님들의 지상최대의 임무였다.


굳이. 내가. 왜 선택을 해야하는지 조차도 알 수 없었지만 난생 처음으로 주어진 기회에 가슴이 살짝 떨렸다. 문학을 하고 싶었던 막연한 속내가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그래, 서양문학 중 어느 것이라도 상관없지. 아프리카 문학이라도 상관없다. 문학은 하나니까. 하필 독일어가 늘 점수가 잘 나왔기에 만만하게도 독일문학을 선택했다. 까짓것 해보자 하며.


기대도 없었고 실망도 없었던 대학생활이 펼쳐졌다. 우리는 꺽다리 독일인 교수를 십 미터 전방에서도 피해다니기에 바빴다. 그 키다리 교수가 강의실로 들어서면 모두 한결같이 날 잡아잡수소서~하며 거북목이 되었다. 그 시간을 돌이켜보니 독일인 교수님께 죄송하기 그지없다. 그분도 얼마나 난감하고 고뇌에 한 캠퍼스 생활을 보내셨겠는가. 우리 덕분에.


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간 선배 한 둘을 제외하곤 다들 각자도생을 해야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2학년이 되며 영어를 부전공으로 택했다. 그래, 이상보단 실리지. 영어라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거다. 미국 식민국 백성으로서. 내 머리는 그렇게 굴러갔다. 20년 간 가겟세를 내며 아이들을 가르쳤고 이제 그 티끌모아 태산한 돈으로 조그만 상가를 샀다. 나도 임차인에서 임대인으로 신분상승한 셈이다. 내가 나에게 평생직장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속내도 있었다. 그렇다고 대박을 내거나 운이 좋아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아이들이 쓰나미로 밀려와서 복닥거려 본 적도 없다. 그저 아이들이 한자리 숫자가 될지라도 전을 거두지 않았던 탓? 비결 아닌 비결이다.


영어를 배우려고 했던 유일한 투자는 학교를 졸업하고 시내 모 외국어 학원 회화반을 6개월 남짓 다녔던 것이 전부다. 그것도 수업을 마치고 수강생들과 매일 생맥주 집으로 도장을 찍으며 어울리고 연애했던 추억이 전부다. 고로 영어를 배우려고 돈을 써본 적이 거의 없다. 20대 중반부터 학원에 취업해 아이들을 가르치며 '쓰는 영어'가 아니라 '버는 영어'를 했다. 돈을 쓰면 쓸수록  내 영어 실력이 비례할까. 어학연수 갈 돈으로 대학원에 투자했고 교사자격증을 땄다. 연수 대신 자유롭게 배낭 메고 여행을 하면서 살아있는 영어를 만났다.


예전에 한 번 보조강사를 채용한 적이 있었다. 모은 돈을 다 털어서 캐나다에 6개월 연수를 다녀왔다 했다. 그런데 막상 초등학생 가르칠 실력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선생님을 보고 내심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독학한 성실하고 근면한 선생님의 실력이 탄탄했다. 그 이후로 보조강사를 채용할 때 더 이상 유학파나 연수파를 신뢰하지 않았다. 선생님 본인의 성실성, 노력과 더불어 열정에 주목했다. 그런 분과 함께 일하는 것은 나의 열정에도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계속 돈을 써가면서 언어생활을 하느냐, 벌고 축적하면서 하느냐 본인의 선택이다. 기왕이면 슬기로운 언어생활을 하자. 결국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세월에 숙성해가는 잘 익은 김치와 와인을 즐기듯 오래도록 향유하는 것이 아닌가.


#쓰는영어 #버는영어 #슬기로운언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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