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잠기지 않았다. 침대 시트며 이불이 눅눅하다. 전날 간만에 비가 왔단다. 이건 대참사다. 그냥 담요 하나만 더 달래서 잠을 청했다.
10시간을 날아서 응후라이 공항도착. 고젝으로 택시를 잡아타고 2시간을 달려 내가 묵을 빌라에 도착했다.
고젝 기사님이 친절했다. 둘이서 엉성한 영어로 2시간을 내내 달리면서 대화했다. 발리인의 영어발음에 충격받은 내 뇌 속은 바쁘게 재배치가 시작된다. 꼬삐란 단어가 재배치되기에 시간이 다행히 얼마 안걸렸다. 역시 영어는 맥락이다. 꼬삐가 커피임을 맥락으로 때려잡고 그 이후엔 술술 풀려갔다.
발리의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늦지만 내 생체리듬은 한국 시간에 어김없이 반응한다. 3주의 시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한달살이를 할까했지만 교습소 때문에 내 작은 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3주면 귀국해서 8월 마지막 주부터 수업을 하고 새학기로 진입한다는 자기 합리화로 마무리했다. 20일간 발리, 그것도 우붓 이 한 곳에서 무얼하나. 나는 무얼하러 이 먼 곳까지 돈을 쓰며 날아왔는가. 닭 울음소리가 요란한 새벽이다. 포트에 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끄적여보는것도 내가 있었던 일상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그래, 결국 무얼할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익숙하게 해오던 것을 여기서도 묵묵히 해 나가노라면 내게도 창의성이란 것이 샘솟을 수 있는 행운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책 3권을 넣어왔다. 덕후답게 부족한 건 아닐까 두려움에 한 권을 더 넣으려다 참자, 짐을 생각해야지 하며 뺐다.
폴 오스터 『바움가트너』, 김훈 『흑산』, 샐리 페이지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책 선정 기준은 마음가는대로다. 요즘 소설에 푹 빠져있다. 장편소설을 하나 완성했고 이 곳 발리에서 새로운 소설을 끄적거려 볼 요량이다. 최대한 소설을 읽어보는 게 내겐 삶의 즐거움이자 공부다. 3주간 아껴서 아껴서 읽으리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관광은 애초에 졸업했다. 숙제하듯 빡세게 발도장을 찍는 관광은 삶의 낭비라고 여겨지는 내가 이상한가. 그럴수도. 그냥 나이가 드니 육체도, 정신도 지쳐가니 느긋이 쉬고 다독이며 재생(조금이라도)시키는 여행을 추구하게 되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수영도 하며 한가로이 하루를 보내리라.
그것도 지겨우면 왕궁, 마켓, 논 사이를 걸으며 자연이 하사하는 축복을 맘껏 누리리라. 발리가 나를 불렀으니 나는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