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と秋の間
가을이다. 뚜렷한 경계가 없었다. 뒤돌아보니 가을이었고, 자고 일어나 보니 가을이었다. 잠들기 전 하루하루 그날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고 잠드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남들보다 더 늦게 잠드는 것 같다. 어젯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잠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하루를 곱씹으며 잠잘 준비를 하면서 꿈과 현실 연장선 어딘가에 훌훌 털어버렸을 것이다. 눈을 떴을 땐 또 다른 세상에 와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어제 잠들기 전까지 틀었던 선풍기는 일어나 보니 아직 여름의 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침 공기가 다르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제일 처음 느낄 때는 공기인 거 같다. 계절의 냄새.
꽃이 피고, 풀 내음이 나고, 나무가 물들고, 시들어 떨어지는…… 눈으로 보아야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면 향기를 맡고 추억을 회상하는 경우도 있다. 향기는 맡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기보다 과거에 맡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현재를 기억하는 것 같다. 그렇게 추억이 쌓이고 덮이고 묻힌다.
사계절 중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냄새가 제일 좋다. 특별한 추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 순간은 뭐든지 특별해진다. 아침에 일어나 이젠 조금 쌀쌀해져 이불을 감싸고 있는 내 모습, 그러면서 이젠 선풍기를 넣어놔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원을 끄는 내 모습, 긴 옷을 꺼내 입는 내 모습, 외출 준비를 마치고 무심히 숨을 들이쉬는 것, 가을임을 알리는 맑고 청량한 하늘까지……. 이제 비가 몇 번 더 내리면 완벽한 가을이 올 테고 곧 겨울이 오겠지. 이 모든 것들이 특별하고 지루함이 없다. 마치 첫눈을 보는 것처럼 설레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을보단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순간이 지루하지 않은 일상을 가져다준다. 바로 '여름과 가을 사이'인 것이다.
징크스 아닌 징크스 같은 멍청한 기대감 같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여름과 가을 사이'에 좋은 일이 일어난다.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 게으른 기대감인 것이다. 이번 '여름과 가을 사이'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혹은 잊고 싶었던 것들이 이루어졌다. 외로움이 가고 진실된 사람이 찾아왔다. 한동안 잊고 살았었다. 어찌 보면 갈망하고 있었다고 표현해도 맞을 것 같다. 그렇다고 외로움은 아예 보내진 않았다. 가끔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문득 느끼는 것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좋은 일이 생기는 건지 '여름과 가을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이 다 좋은 건지 생각하게 된다. 특별한 어떤 이유가 없이 특별해진다는 것은 일상에서 지우기 힘든 중독성 있는 활력이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타자를 치고 있는 지금도 이따금씩 계절의 냄새를 느끼고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지루한 일상에 특별함을 느끼고 싶어서…. 매년 같은 '여름과 가을 사이'이지만 매년 다른 '여름과 가을 사이'를 느끼고 싶어서……. 살아있는 지금을 더 특별하게 느끼기 위해, 감동의 여운을 더 즐기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