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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Jan 07. 2021

나의 눈동자 속에 흩날리는 모든 것들

Hoppipolla


 이 글은 누군가의 권유로 쓰게 됐습니다.


 다시는 이렇게 쓸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또 찾아가게 됐고 다시 한번 권유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다시 이런 글을 쓰게 됐다는 건 별로 효과는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쓸 수밖에 없습니다.


 눈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늘의 눈은 이미 그쳤습니다. 가로등이나 간판에 쌓여있던 눈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려 떨어집니다. 이제 구름은 보이지 않지만 눈이 내리는 기분입니다. 마치 겨울의 무지개를 보는 기분입니다. 누군가의 어깨에 쌓여있던 짐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바람에 씻겨 날려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내가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릅니다. 나의 어깨에 쌓인 눈덩이 같은 짐들을 이제는 바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내 손으로 털어내려 합니다. 누구보다 힘차게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내 눈동자 속에 흩날리는 모든 것들을 털어낼 것입니다.


 내가 털어내고 있는 게 눈이나 먼지만이 아닙니다. 어쩌면 나의 모든 것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내 삶의 일부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은 제 눈동자 속에 당신이 있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를 지켜봤었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본 당신은 저와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저의 눈동자엔 당신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당신 눈동자에 비친 저의 모습을 보며 아침마다 면도를 했고 언제나 웃고 울었었습니다. 이제는 저의 모습도 어떤지 모릅니다. 저의 수염은 얼마나 자랐을까요. 어깨의 짐부터 털고 거울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저는 눈을 감거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서로 지켜보고 있던 거리가 멀어져 갔습니다. 우리의 방향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어서 언제나 당신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당신의 등을 잡아당겼고 나는 그런 당신을 잡아챌 겨를도 없이 알게 모르게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그렇게 당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저는 한시도 한눈팔지 않고 당신만을 바라봤습니다. 제 눈동자 속에서 흩날리는 당신의 머리카락이 점점 흐려지더니 끝내 먼지보다 작은 존재로 사라졌습니다.


 오늘 밖에는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그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과 나무 어깨에 쌓인 눈이 흩날리는 걸 봤습니다. 그리고 저도 저의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씻으면서 거울을 보고 면도를 했습니다. 내 눈동자 속에 흩날리는 모든 것들을 보고 저의 짐도 털어냈습니다. 그리고 추운 온기를 녹이기 위해 따듯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따가 침대에 누우면 노래 한 곡을 듣고 잘 예정입니다. 한 가지만 부탁하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밤 중에 누워서 눈을 감고 Hoppipolla를 꼭 들어봤으면 합니다. 어쩌면 잘 때 당신도 어깨에 쌓인 모든 것들을 털어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잠들 때까지 제가 어깨에 쌓인 모든 것들을 지켜보겠습니다. 내 눈동자 속에 흩날리는 당신을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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