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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morebi Dec 25. 2020

Autumn Leaves

Dive


 가을이 길다. 가을은 길고 조용하다. 가을은 길고 조용하며 낙엽은 나를 피하며 떨어진다. 나를 피한다. 낙엽조차 나를 피한다. 그래도 거짓말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밤이 깊어져도 거리엔 달빛을 품은 낙엽들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그런 낙엽들은 자신을 희생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가을의 냄새를 전하고 있다. 다른 계절의 냄새도 좋지만 유독 여운이 많이 가는 게 가을인 거 같다. 나는 그런 가을의 냄새가 좋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다. 그동안의 삶이 알려준 대답이다. 그러기에 마음을 먹었으면 실천을 해야 한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하고 도망치는 것보다 버티는 거에 익숙해져야 한다. 죽을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사랑을 하기로 했으면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고 그러지 않으려면 적당히 마음의 벽을 두고 그만큼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적어도 나의 마음만큼만 상대방에게 보여주려고 해야 하고 흔들지 않고 많은 상상을 하게 하면 안 된다. 바다에 빠졌으면 수영을 못하더라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하는지 참아야 하는지 구분을 지을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울고 싶지만 울기엔 슬픔이 너무 굳어버렸다. 도망치기엔 책임져야 할게 늘었다. 귀를 닫기엔 듣고 살아야 할게 많아졌다. 눈을 감기엔 새벽이 너무 길다.


 가을은 들떴던 여름을 한 번 더 가라앉게 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계절인 거 같다. 너무 넘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게 나 자신을 생각하며 타일르고 쓸쓸해질 겨울을 대비해 한층 더 단단하게 해 준다. 나에게 이번 여름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계절이었다. 많은 것을 참고 기다려왔기 때문에 최대한 넘치지 않게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하지만 이번 가을에는 넘쳤던 마음을 비우는 방법이 유독 힘들었던 거 같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가. 내가 그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나 혼자 떠들기엔 공백의 찬 바람이 많이 시렸다. 나의 가을은 그렇게 소리 없이 떠났다.


가을바람 따라 비우고, 울고, 마르고, 채우고를 반복하다 보니까 이제야 하고 싶은 말이 없어졌다. 이제 한 여름의 잠수부 짓은 그만 하고 수면 위로 올라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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