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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Mar 15. 2023

오늘도 그렇게.

나의 최선으로.

아침저녁으로 엄마의 국밥집에 출근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 알바 왔어?’하며 웃어주는 엄마의 얼굴을 매일 본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주전부리를 챙겨 가면 아빠는 ‘우리 알바가 오늘은 뭘 사 왔을까?’하고 웃는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향해 웃음을 보인적이 많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지나간 시간이 서러워 마음 한편이 뻐근해진다. 웃는 얼굴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함께 나누는 일이 우리에겐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물론 지금도 어떤 날은 마음이 형편없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얼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견뎌내야 하는 날이 그렇다. 잘 지내다가도 한 번씩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들어오는 반격의 장면들. 이를테면, 우두커니 등을 돌리고 선 텅 빈 엄마의 뒷모습이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사납게 일그러지는 아빠의 얼굴 같은 것. 그럴 때면 손님이 몰려 정신없이 국밥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마음엔 설명할 수 없는 허기가 돈다. 사정없이 부대끼는 마음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숨이 차다.      


그럼 난, 불안이 일렁이는 마음이 새어 나오지 않게 가만히 서서 시선을 발 끝에 모아둔다. 끌차 바퀴에 쓸려 검은 때가 묻은 크록스의 뭉특한 앞 코. 그런 순간에 내가 기댈 것 이라곤 그런 것뿐이다.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사물들. 냉장고의 손잡이나, 수저통의 동그란 손잡이, 조미료통에 그려져 있는 조악한 그림이나 차곡차곡 개어둔 행주 가장자리에 달린 작은 라벨 같은 것. 그럼에도 자주 발 끝에 시선이 머무는 건, 시선이 바닥을 향했을 때 시야가 가장 좁아지기 때문이다. 시야를 좁혀 한 곳에 시선을 모으면 그때부턴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의 무의식이 기억의 방아쇠를 당겨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끌어오기 전에 나를 텅 비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나를 놓아둔다. 써놓고 보니 참 우습지만 그렇다.     

 

느슨하고 엉성하기만 한 이 연결고리를 나는 놓아버리지 못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단단하고 예쁜 고리를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말 그런 것이 있기나 한지도.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가 다시 일상을 나누게 된 엄마의 국밥집이 지난한 기억을 모아둔 장소와 다른 곳에 머무르길 바랄 뿐이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보다 서로를 보며 웃는 날이 더 많기를, 서툴지만 서로를 향한 작은 노력들이 어느 한 날엔 폭죽처럼 빛나게 터져 오르길, 서걱서걱한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매끄러워 지길...      



가끔 생각한다. 더 나이가 들면 나도 엄마처럼 외롭고 쓸쓸한 뒷모습을 가지게 될까? 혹은 아빠처럼 사나운 얼굴로 아이들의 마음에 흉터를 남기게 될까? 그런 나를 보면서 내 아이도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있을까 같은 생각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단단하지 못한 위태로운 내 모습들이 아이들의 마음에 남길 서사를 생각하면 퍼뜩 정신이 드는 것이다.      


부모가 된 나는(나도?) 모른다. 이미 아이들의 마음에 남았을지 모를 흉터와 자잘한 무늬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엄마’ 하고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아이들이 어떤 색으로 나를 감각하고 있는지도.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엉성한 고리를 놓아버리지 못한다. 되려 그 고리를 단단히 쥐려 애쓰는 중이다. 마음먹은 대로 착착 흘러가지 않는 게 삶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나의 부모님도, 부모가 된 나도 수많은 다짐과 바람 그 어디쯤에서 때론 가슴을 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지 모르겠다. 발끝을 내려다보게 되는 순간에 나를 묶어두지 않는 것. 다시 고개를 들면 내 안에 새겨진 가장 아름다운 무늬를 찾아보는 것. 가끔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 아이들 마음에 새겨질 무늬를 떠올려 보는 것. 밀어내기 전에 당겨 보는 것. 밀리기 전에 나를 돌아보는 것. 나아질 거란 믿음보다 나아질 수 있는 한 발을 떼어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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