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이 되었다. 만 나이로 따지자면 생일이 느려 두 살은 줄어들지만 어쨌든 마흔이다. 서른 중반에 들어서부터는 나이를 셈 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낯선 사람과 통성명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으레 묻곤 하던 '몇 년생이에요?'란 질문을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가끔 누군가 내게 나이를 물으면 대답대신 혼잣말 같은 질문을 한다.
"음.. 저 84인데.. 잠시만요.. 내가 올해 몇 살이더라?"
어딜 가나 제일 어리던 때, 어느 모임이든 막내의 자리에 있을 땐 자주, 쉽게 사람들에게 나이를 묻곤 했다. 어릴 땐 그게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해맑게 나이를 묻는 내가 싫었을 사람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흔이 되고 보니 일부러 나이를 셈 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체감하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이라기보다, '세월'이란 말이 맞을지 모르겠다. 40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나이 듦' , 그러니까 '나이는 못 속여'라는 느낌적인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오늘처럼 변경된 아이의 스케줄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언제 데리러 오냐는 아이의 전화를 받고도 '왜?'라고 되물어야 했을 땐 더더욱.(휴)
일상의 변화도 크다. 나이가 들 수록 매일 머리를 감지 않는 날이 늘었다. 하루에 두 번씩 샤워를 하면서도 씻는데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이던 나는 사라진 지 오래다. 될 수 있다면 빨리 후다닥 씻는다.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고 싶어서다. 나의 육체는 매년 더 잦은 쉼을 원한다. 미용실에 거의 가지 않는다. 1년에 한두 번, 충동적으로 염색이나 펌이 하고 싶을 때 드물게 가지만 그마저도 점점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화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곤하면 세수도 하지 않고 엎어져 잔다. 이젠, 거울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게 너무 피곤한 일이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고 나이가 들수록 삶은 더 정신없어지는데, 어째서 인지 나는 예전보다 더 게으름을 부리고 느려지는 기분이다. 무얼 해도 휘뚝휘뚝 해내던 사람이 난데, 요즘의 난, 한 마리 나무늘보 같다. 자도 자도 졸리고,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지향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도 잦아졌다. 얼마 전엔 카드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어떤 분이 길에서 주웠다며 신분증에 있는 주소를 보고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주셨다. 장을 보고 오거나, 도서관에 다녀와 짐이 많은 날엔 정신없이 물건을 내려두고 정리를 하다 차키를 어딘가에 떨어트리곤 한참을 찾아 헤맨다. 정리정돈에 최적화된 몸이라 물건을 찾아 진땀을 빼는 일은 없었는데, 점점 더 그런 날이 늘고 있다. 눈밑이 바르르 떨리는 날도, 다리에 쥐가 나는 날도 많아졌다. 듬성듬성 올라오는 새치와 피로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육체를 마주하는 게 더는 낯설지 않고 익숙한 일상의 장면이 되었다. 그러다 때때로 '그래, 내가 벌써 마흔이었지.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하고 중얼거리는 나를 보게 된다.
오늘은 오전출근과 장보기를 마친 후 두시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려다, 바지 위로 올라온 라벨을 보았다. 다행히 길지 않아 슬쩍 위로 튀어나와 있었지만, 그러고 돌아다닌 걸 생각하니 '으휴' 하고 낮은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물론 나이가 들어 좋은 점도 있다. 젤리나 사탕 같은 군것질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책상 서랍이나 자동차 글로브박스 안을 아이 셔나 꿈툴이로 채워놔도 누구도 내게 잔소리하지 않는다는 것(누구도 마흔이 된 성인 여성의 치아나, 양치질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므로).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고, 각오나 다짐으로 벗어나고자 했던 꾸밈노동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저녁 산책을 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캄캄한 하늘을 보며 여유롭게 캔맥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확고한 나만의 취향을 갖게 된 것 등등등.
오늘은 큰 아이가 졸업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잘 찍었냐고 물으니, 커다란 머리통을 그러쥐고 약간의 절망과 약간의 부끄러움이 섞인 몸짓으로 침대 위로 몸을 쓰러트리며 말했다.
"망했어. 으으으. 망해버렸어!"
침대 위에서 몇 초간의 몸부림을 치다 나간 아이는, 좁쌀 여드름을 박살 내준다는 패치를 얼굴에 붙이고 나타나 피부가 한결 좋아진 것 같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고 갔다. 쿵쿵쿵.
나는, 눈을 맞추려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버린 아이의 발소리를 들으며 중학생이 된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생각만으로 귀엽고 기특하고 듬직해서 웃음이 났다. 그러다 퍼뜩 궁금해졌다. 내가 종종 아이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처럼, 아이도 나의 미래(엄마의 노년)를 상상하는 날이 있을까?, 혹시 그런 날이 있다면 아이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노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그런 생각을 하자니 나이 탓을 하며 세월을 노래할게 아니라, 바싹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환갑이 되었을 무렵부터 열심히 색칠공부(시니어 컬러링북)를 하던 친정 엄마의 마음도 지금의 내 마음 같았을까? 상상해 보면서.